고등학생이 그린 만화 한 편이 화제다. ‘윤석열차’라는 제목처럼, 대통령의 얼굴을 한 기차가 ‘칙칙폭폭’ 달리고, 기차에 놀란 사람들이 황급히 도망가는 그림이다. 기관사 자리에는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고, 날카로운 인상의 검사 여럿도 긴 칼을 든 채 탑승해 있다. 누가 봐도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또렷한’ 풍자의 만화다.
풍자는 언제나 논란을 낳는다. ‘정치적 현실 등에 가해지는 비판적, 조소적 발언’이 풍자의 뜻. 살아 있는 권력자나 그를 중심으로 한 집단을 ‘비아냥’과 ‘비판’의 경계에서 선 언어로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이니, 논란은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뭇매를 가한 건 그래서 예상 가능했다. 무엇보다 만화가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 아닌가. 축제를 위해 100억 원 넘는 돈을 지원한 문체부가 대통령을 직격한 그림을 뒷짐 지고 보고만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런 문체부는 이렇게 말했다. “행사 취지에 어긋한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히 경고한다.”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난다.”
‘아이’를 준엄하게 꾸짖는 듯한 '어른'의 말투 속에서 당장 몇몇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행사 취지에 어긋난 작품’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 등의 표현에선 농담을 진담으로 맞받아치는 때의 민망함과 어색함이 느껴졌다.
짐작건대 문체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등학생이, 감히 대통령을?” 적법 절차인 서면 조사 요구에 “무례하다”고 직격탄을 날린 전직 대통령의 그것처럼 말이다. 문체부의 진정을 함부로 재단해선 안 되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들렸다.
“어디선가 상처받아 힘들어하고 있을 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조용익 부천시장의 말은 그래서 반가웠다. “카툰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한 컷짜리 만화”라며 “기성세대의 잣대로 청소년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간섭해선 안 된다”는 말은 시원시원하기까지 했다.
조 시장 말을 한 번 되새김질해볼 필요가 있다. 용의 턱 아래에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한다는, 임금의 노여움(역린)을 걱정하는 문체부의 충성심. 만화를 뜬금없이 대법원 국정감사장으로까지 끌고 들어온 야당 정치인. 맞불이랍시고 ‘표절’로 만화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여당 의원들. 그들을 보면서 “아무리 팬덤 정치 세상이라고 해도, 풍자의 영역에까지 이렇게 날을 세우는 건 지나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팍팍하다. 개그콘서트가 없어져서가 아니다. 고교생의 만화 한 컷조차 웃어 넘기지 못하고 시비를 거는 모습 때문이다. 풍자를 풍자가 아니라,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이는 세상, 모든 걸 승과 패로 재단하며 양보 없는 싸움으로 몰고 가는, 지금 2022년 대한민국에서 건조함이 느껴진다.
풍자의 대상은 나도 당신도, 장관도 대통령도 될 수 있다. 혐오의 언어가 아니라면 말이다. 게다가 국민에게 어떤 즐거움도 주지 못하는 대통령이라면, 그런 재미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작은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