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도 인터넷에도 하메네이 욕뿐'...대학생·젠지, 이란 반정부 시위 중심에

입력
2022.10.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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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개강 맞춰 시위 대학가로 번져
최전선엔 여성… Z세대 여고생도 동참
이란 정부 "미국 등 외부 탓"...여론 악화

지난 2일(현지시간) 이란의 MIT로 불리는 수도 테헤란의 샤리프공과대학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간 마흐사 아미니(22)의 죽음에 항의하는 학생들은 "독재자에게 죽음을"을 외쳤고, 경찰은 이들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고, 최루탄을 쏴댔다.

인터넷 역시 반정부 시위 불길이 번지고 있다. 이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Gen Z·젠지)'다. 여고생 신분이지만 히잡을 벗어던지는 동영상을 공유하고, 이란 최고 지도자를 향해 거침없는 손가락 욕을 하기도 한다. 초기 여성이 주도하던 이란 반정부 시위 동력을 대학생과 Z세대가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반정부 구호 외치고, 수업 거부… 불붙는 대학생 시위

4일(현지시간)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달 들어 이란 대학들이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젊은 층을 주축으로 한 시위가 대학에서 대학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주말 샤리프대학을 비롯해 마슈하드, 사난다즈, 쉬라즈 같은 이란 주요 도시의 대학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잇따랐다.


샤리프대 이슬람학생연합은 성명을 통해 "샤리프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은 체포된 모든 학생이 석방될 때까지 수업에 참석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이란 전역의 학생과 교수들도 연대해 수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샤리프대에서만 300명 넘는 학생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대는 "(이란에서도 악명 높은 테헤란의) 에빈 교도소가 대학이 됐다"고 외쳤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최전선의 여성들… 하메네이에 손가락 욕도

거리가 아닌 교실과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10대 여고생들의 저항 역시 이번 시위의 특징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 상대적으로 자유롭던 이란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9세가 되면 히잡을 강제로 써야 했던 세대다. 하지만 여느 Z세대처럼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 친숙하다. 여고생들은 교실에서 히잡을 벗어던지고,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화에 손가락 욕을 하는 동영상과 사진을 온라인에 전송한다. 당국이 소셜미디어의 접속을 막고, 오후부터 자정까지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지만 인터넷 시위 규모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홀리 데이그리스 선임연구원은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이란의 '젠지'는 그들의 나라가 부패하고 위선적인 성직자의 지배하에 어떻게 고립돼 있는지 잘 안다"며 "그들은 당연히 (자유세계에서 당연한 것들을) 더 원한다"고 미 CBS방송에 말했다.



'미국 배후설'에 보수언론조차 "사실 부정은 도움 안 돼"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란 당국은 엉뚱하게 '미국 배후설'을 내놓았다. 아미니의 죽음 이후 지난 3일 처음 입을 연 하메네이는 "미국이 시위를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긴 어려워 보인다. 이란 보수 일간 '좀후리 에슬라미'조차 사설을 통해 "외부 세력이 국내 불만 없이 도시를 폭동 상태로 만들 수는 없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율법학자 출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지난 5일 "정당한 시위와 폭동은 구분해야 한다"며 "'우리의 가치'는 수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시위를 촉발한 히잡 강제 착용은 고수한다는 입장을 못 박은 것이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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