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할 때 아니다

입력
2022.10.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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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과 정부가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정부조직 개편안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란 점을 들어 여가부를 없애고 그 업무를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에 넘기는 방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과 여성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유례없는 경제위기 속에 사회통합을 이끌어도 모자랄 정부가 되레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지난해 남녀 임금 격차는 38.1%에 이른다. 남성이 100만 원 받을 때 여성은 61만9,000원을 받았다. 격차가 OECD 회원국 평균(12.8%)의 3배나 되고, 2020년(35.9%)보다도 벌어졌다. 성차별 문제의식이 확산되긴 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작년 전체 강력 범죄 피해자 2만2,476명 중 85.8%가 여성이다. 지난달 서울 지하철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성평등 강화”와 “여성의 생존권”을 호소했다. 여가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은 지난달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한 성평등 발언을 감추려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여성 문제와 관련해 해리스 부통령의 언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했다가 백악관 자료가 공개되자 있었다고 정정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미 행정부가 한국과 세계의 성평등 및 여성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평등을 핵심 어젠다 중 하나로 내건 ‘가치동맹국’이 윤 정부를 주시하고 있다.

여가부 업무를 여러 부처에 흩어 놓으면 존속은 가능할지 모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구심점을 잃을 거란 우려가 크다. 공약이라고 무조건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의견 수렴과 면밀한 분석을 거쳐 조정할 수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민주주의 힘의 진정한 척도는 여성의 힘과 지위의 정도”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멀었다. 변화에는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