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 몰린 러시아, 핵카드 '만지작'...우크라는 남부서도 승전보

입력
2022.10.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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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북극해 핵실험·전방 핵무기 배치 우려 제기
우크라, 남부 전선 돌파…"러, 방어 능력 상실 직전"
러 서방군 사령관 해임…"실수 숨기기 어려워져"

우크라이나군의 공세에 밀린 러시아가 서방을 압박하기 위해 '핵시위'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실제 러시아군은 최근 동부 루한스크의 요충지 리만을 빼앗긴 데 이어 남부 헤르손에서는 보급로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가 합병을 선언한 4개 주(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중 러시아군이 완전히 통제하는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더타임스 "러, 핵장비 수송·핵실험 준비 정황"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 이탈리아 언론 라레푸블리카 보도를 종합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회원국과 동맹국에 러시아의 핵실험을 경고하는 첩보를 보냈다. 러시아 백해 기지 인근에선 올해 7월부터 최첨단 핵잠수함 '벨고로드'가 활동 중이었는데, 최근 이 잠수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두 언론은 벨고로드가 핵실험을 위해 북극해로 향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벨고로드는 '최후의 날(둠스데이)' 무기로 불리는 핵어뢰 '포세이돈'을 최대 8발 장착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포세이돈의 위력은 2메가톤(TNT 200만 톤 위력)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00배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에 소규모 전술핵무기를 배치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지난 2일 친러시아 성향의 한 텔레그램 채널에는 병력수송차와 장비 등을 실은 대형 화물열차가 러시아 중부에서 우크라이나 국경 방향으로 향하는 영상과 사진이 올라왔다.

이와 관련해 더타임스는 "열차는 핵장비 관리와 관련 부대 배치 등을 담당하는 러시아 정부 제12총국과 연관됐다"며 서방에 보내는 '핵위협 신호'일 수 있다고 국방 전문가를 인용 보도했다.

러시아 측은 핵실험·핵무기 사용 가능성과 관련해 '서방의 허언'이라고 일축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4일 기자회견에서 더타임스 보도에 대한 확인 요청을 받자 "서방 정치인과 국가 원수들, 서방 언론이 핵 관련 허언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며 "우리는 여기에 관여할 뜻이 없다"고 답했다.

"전쟁사서 가장 빠른 진군"…공세 퍼붓는 우크라

러시아가 '핵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그만큼 전장에서 밀리고 있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러시아군은 동부전선뿐 아니라 남부 헤르손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 아르한겔스크와 미롤류비우카, 두드차니 등 여러 마을을 수복했는데, 이 중 두드차니는 러시아군 보급로와 가깝다.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 올레 즈다노프는 로이터통신에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을 돌파했다는 건 러시아군이 이미 공격 능력을 잃었고, 내일이면 방어 능력도 잃을 것이란 의미"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루한스크 리만 인근의 자리치네와 토르스케도 탈환했다고 밝혔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동부 이지움 근처 도로에선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 잔해가 버려진 모습이 포착됐다.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은 "남부에서 우크라이나의 진격이 굉장한 속도로 진행 중"이라며 "전쟁사에서 가장 빠른 진군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기세를 몰아 우크라이나는 더 많은 영토 탈환에 나서는 모습이다. CNN방송은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가 미국의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를 지원받기 위해 미 정부에 '구체적인 타격 목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무기가 러시아 본토 공격에 이용될 것을 우려한 미국이 지원을 거부하자, 안심시키기 위해 타격 목표물을 설명한 것이다. 에이태큼스의 사거리는 약 300km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의 4배 수준이다.

패배가 계속되자 러시아는 혼란에 빠졌다. 러시아 정부는 서방군을 지휘하는 알렉산더 주라블리요프 사령관을 해임하고 후임에 로만 베르드니코프 중장을 임명했다. 주라블리요프와 일했던 한 군 관료는 가디언에 "(해임은) 분명히 전쟁에서 생긴 큰 실수와 관련이 있고, 이를 숨기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장에서 수세에 몰린 만큼 러시아의 점령지 합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4일 러시아 상원은 점령지 4곳의 합병 조약을 만장일치로 비준했다. 조약은 푸틴 대통령의 최종 승인만을 남겨 두고 있다.

장수현 기자
권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