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정부가 발표한 전기요금 인상안에는 전력 소비량이 많은 사용자에게 전기요금을 더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동안은 주택이나 일반, 산업용 등 용도와 관계없이 일괄 인상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번엔 거기에 더해 대기업에 추가 부담을 지우는 카드까지 전격 꺼내든 것이다. 에너지 위기로 전례 없는 적자 수렁에 빠진 한국전력을 구하기 위해선 전기요금 우대정책으로 혜택을 봐온 대기업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계는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전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모든 소비자의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2.5원 인상하고 산업용·일반용 대용량 고객은 추가 인상하되 공급전압에 따라 7~11.7원까지 차등조정하기로 했다. 또한 내년 1월부터 농사용 전력 적용 대상에서 대기업을 제외한다.
이를 두고 정부가 전기 사용 비중이 가장 큰 산업용 전기에 메스를 들이대는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산업용 전기 사용 비중은 전체의 55%로, 일반용(공공·상업용, 22%), 주택용(15%), 농사용(4%) 등 나머지 전체 사용량보다 많았다. 산업용은 계약호수로 전체 0.2%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주택용(㎾h당 109.16원)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산업용 전기(㎾h당 105.48원)는 최근 국제 에너지가 급등 이후 원가 회수율이 60%대까지 떨어지면서 한전의 재무 상태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6일 1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를 열고 "(전력) 대용량 사업자를 중심으로 우선적인 요금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추가 인상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대용량 사업자들에 대한 차등 요금 인상이 시작된 만큼 상당 기간 요금 인상이 지속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모든 소비자 대상 요금이 점진적으로 오르면서 대용량 사업자에 대한 요금 인상폭도 늘어날 것"이라며 "최근 전기료 인상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추이에 따라 20원대까지 추가 인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논평을 통해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 상황에 놓인 우리 기업들의 경영활동 위축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조영준 지속가능경영원장 명의 논평에서 "최근 고환율·고금리·고물가에 더해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기업들에 매우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특히 뿌리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고려하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업종별로는 반도체와 철강, 자동차, 정유,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용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한 기업은 삼성전자(1만8,412GWh), SK하이닉스(9,209GWh), 현대제철(7,038GWh) 순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각각 1조7,461억 원, 8,670억 원의 전기요금을 냈는데, 전기요금이 kWh당 10원 인상되면 삼성전자 약 1,800억 원, SK하이닉스는 약 900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장이 증설하며 두 기업의 전력 사용량이 해마다 늘었던 것을 살피면 내년도 실질 부담액은 더 증가할 예정이다.
철강사들 역시 전기요금이 킬로와트시(㎾h)당 5원 오르면 1,000억 원 이상의 전기료를 추가 지불할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저성장 고물가 상황에서 전력원가 상승에 따른 원가부담이 더해질 것으로 예상돼, 이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생산과정의 원가부담보다 전기차 수요 감소에 대한 걱정이 크다. 충전요금이 인상되면 전기차의 경제성에 대한 강점이 약해져 판매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