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호구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입력
2022.10.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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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왜 실패하는가]
(상) 한 달 간의 개미굴 체험

편집자주

여러분의 주식 계좌는 어떤가요? 잔고가 아직 빨간색인 당신, 상위 1%의 초고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앱을 지우고 싶을 정도로 처참한 심정일 겁니다. 왜 이렇게 우리 개미는 실패하고 마는 걸까요? 연준의 금리인상, 기울어진 운동장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외부 환경과 상관 없이 상승·하락장 모든 국면에서 개미가 족족 실패하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뭔가 투자 행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일보 기자가 전업투자에 뛰어들어 ‘개미가 망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한 번 찾아봤습니다.



"포커 판에서 30분이 지나도록 호구(patsy)를 찾을 수 없다면, 당신이 바로 그 호구라는 얘기다."
워렌 버핏 버크셔 헤셔웨이 CEO

버핏의 이 격언은 '개인투자자(개미)의 무덤'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먹이사슬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표현 중 하나다. 개미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아니 정신을 차려도, 한 순간에 눈 뜨고 코 베이다 결국 호구 잡히고 마는 무서운 투전판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개미는 기관과 외국인의 영원한 '밥'. 상승장에선 단물 다 빨린 종목을 따라가다 물리고, 하락장에선 떨어지는 칼날에 손대다 제대로 코가 꿰이고, 급기야 손절 타이밍을 잡지 못해 주식 애플리케이션(앱)을 지워버리고야 마는 것이 이 땅 평범한 개미의 투자 일기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했는지 찾아낼 수 있다."


버핏의 이 두 번째 격언은 '하락장에 가야 진정한 실력이 드러난다'는 통찰이다. 거대한 코로나 유동성이 공급된 2020년 주식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고,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든 개미들도 쏠쏠한 수익률을 맛봤다. 20%, 30% 수익은 우스웠고, "나는 주식에 재능을 타고났어" 착각하는 개미들도 많았다.

그러나 각국 중앙은행이 돈줄을 죄자 지수가 추락했다. 그 와중에 개미의 수익률은 유독 처참했다. 주변 실패담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굳이 수치가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개미지옥'의 현실을 통계로 살펴보면 이렇다.

한국일보가 올해 1~3분기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5개 종목(삼성전자·네이버·카카오·삼성전자우·하이닉스)의 평균 수익률을 조사했더니 -40.2%로 집계됐다. 기관의 5대 순매수 종목(LG엔솔·신한지주·한화솔루션·삼성SDI·셀트리온)의 수익률은 -4.1%였고, 외국인 5대 순매수 종목(우리금융·글로비스·LG화학·하이닉스·기아) 수익률은 -16.8%였다. 개미는 맨날 사던 종목을 벗어나지 못했고,기관·외국인은 선호 종목을 바꾸며 리스크 관리에 성공한 것이다.

개미는 항상 떨어지는 종목에만 투자하는 것일까, 아니면 개미가 투자하니 떨어지는 것일까? 달걀과 닭의 기원과 같은 이 숙제를 풀기 위해 직접 '내 돈'을 걸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개미굴 안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모습을 알기 어렵기에.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한국일보 기자가 약 한 달 동안 서울의 주식매매방 두 곳에서 자본금 500만원으로 경험한 실전 투자 일기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이렇다. "그래도 내가 상경계열을 졸업했는데." "책을 많이 읽고 유튜브로 이론을 공부했으니 쉽게 잃지는 않을 거야. "설마 내가 호구 잡히기야 하겠어?" 이런 자만감은 한 달 만에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①투자의 시작-나만의 원칙을 만들다

#전업투자 1일차 일기. 떨리는 마음으로 서울의 한 주식매매방에 출근했다. 30여 명의 전업투자자들이 있는 꽤 규모가 있는 곳이었다. 오후 1시까지 관망하다 장 후반부터 사고팔기를 시작했다. 첫날 평가익은 3만 100원. "주식, 별 거 아니네"라는 자만감과 "이렇게 해선 큰 돈 못 벌겠다"는 조급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주식에 전념하기 위해선 주식매매방을 찾아야 했다. 매매방은 전업투자자들이 거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다. 독서실처럼 생긴 공간, 사무기기, 음료 등을 이용한 대가로 월 20만~30만 원을 낸다.

초보인 만큼 국내 증시를 위주로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주로 매수한 주식의 가격대는 2,000~1만 원이었다. 가격이 낮은 주식은 위험성이 크고, 비싼 주식은 변동성이 적어 수익을 보기 힘들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통 하루 일과는 이랬다. 오전 8시 출근해 전날 해외 시황과 뉴스를 확인하고 정보지(지라시)와 투자 커뮤니티, 종목토론방(종토방) 글을 샅샅이 살폈다. 오전 9시 개장 후 '한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정보를 미리 얻었다. 이 때 거래량이 많은 만큼 잘만 탑승하면 수익을 보고 바로 빠질 기회가 많다. 오후 2시까지 언론 보도와 주가 흐름을 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사고 팔기를 반복하고, 오후 2시 30분부터 40분가량 다시 매매에 집중했다. 장 막판에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주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주가 흘렀다.

②투자 초기-'초반 끗발'이 붙다


#매매방 6일차. '내 멋대로식 투자'로 5일 동안 34만 원을 벌었다. 100만 원으로 시작했으니 수익률이 30%를 넘는다. 나 혹시 주식에 재능 있었나. 자본금이 적었던 게 아쉬웠다. 취재로 시작한 투자지만 자본금을 500만 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라'는 격언을 응용해, 허벅지에 사서 배꼽에 팔기로 했다. 거래량 상위 종목 중 차트와 호가창을 보고 더 오를 것 같은 종목을 사들여 수익을 보는 식이었다. 유동성이 큰 시장에서도 리스크를 최대한 낮추는 소위 '짤짤이' 방식이다.

초반 승률은 좋았다. 적은 예산으로 투자에 나서니 과감한 결정이 가능했다. 8월 30일에는 코스닥 바이오주 앱클론의 급등세에 올라탔다. 치료제가 북미 특허 등록에 성공했다는 호재에 상한가를 기록했는데, 빠르게 오르는 주가에 매수주문을 거는데 성공해 8만 원의 수익을 보고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금방 한계가 드러났다. 말이 허벅지에 사서 배꼽에 판다지, 막상 급변하는 차트를 보자니 어디가 허벅지고 배꼽인지를 알 길이 없었다. 계속 수익을 보다가도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큰 상실감이 밀려왔다. 다른 주식이 급등하는 것을 보면 "빨리 팔고 여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에 매매 버튼을 누르고 싶어졌다.

2주차부터는 자본금을 500만 원으로 늘리고, 거래 종목도 코스피에서 코스닥으로 옮겨가며 점차 리스크가 큰 주식에 손을 댔다. 처음에 위험해 보여 쳐다보지 않던 몇 백원짜리 '동전주'도 취급했다.

③투자 중반-주변 개미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매방 13일차. 여유가 생기니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외선물을 하는 50대 남성 A씨는 오전엔 유독 신경이 곤두서 있다. 홍콩 항셍 선물거래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혼을 했다고 했는데, 이혼 사유가 주식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매매방 사람들은 장중엔 담배도 피지 않을 정도로 매매에만 집중한다. 이 곳엔 다양한 개미들이 있다. 해외 주식을 하는 사람도 많아, 매매방 이용 시간도 제각각이다. '코인러' 20대 B씨의 출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그는 인터넷강의를 들으면서 매매를 했다. 주식 경력이 20년이 넘는 60대 C씨는 3년 전 코인에도 발을 들여놓았다고 한다. 가상화폐는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최근에는 주식과 가상화폐의 경계가 사라졌다"며 "명절에 심심해서 코인을 시작했는데, 크게는 안하고 소소하게만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옆 좌석 40대 남성 D씨는 4년 전 주식 투자에 뛰어들어 큰 수익을 봤다고 한다. 잘 다니던 중견기업을 그만두고 지금은 수 억 원대을 굴리는 전업투자자로 변신했다. 그런 그도 요즘엔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그는 "올해 같은 하락장엔 손해만 안 보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매매방 터줏대감 50대 후반의 증권맨 출신 E씨도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만 6년을 있었다고 한다.

매매방 사람들끼리 점심식사를 했는데, 역시 대화 주제는 주식이었다. '주식 초짜'로서 선배들의 투자 비결을 물어봤는데, 다들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누가 자기 영업비밀을 공개하겠는가.

다만 옆 자리 D씨는 의외로 흔쾌히 자기만의 비법을 설명했는데, 복잡해서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본인은 체득하고 있지만 말로는 풀어내기 힘든 방식이지 않았을까. 마치 서울대 학생에게 공부 잘하는 비법을 물어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④투자의 위기-시장을 이해할 수 없다


#매매방 16일차. 시장은 이해할 수 없다. 한 바이오기업의 주가가 오후 2시쯤 되자 5분도 안돼 갑자기 10% 급등했다. 호가창을 보고 있었는데, 7,020원이던 주식이 30초 만에 7,610원까지 치솟았다. 단 20분 만 거래량이 500만 주에 육박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치솟던 주가가 단 30분 만에 장대음봉으로 돌아서며 제 자리를 찾아갔다.

바닥에 딱 붙어 사는 개미에겐 세상은 그저 2차원으로만 보일 뿐. 개미가 사는 세상의 원리는 현실 세계와 달랐다. 주가는 계속해서 움직이는데, 운동의 법칙이란 게 없었다. 주가는 개미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간다. S사 주식은 차트 추세대로라면 더 올라야 하는데 하락하고, T사 주식은 이제 반등할만 한데 계속 떨어지고, V사 주식은 호재도 없었는데 뜬금없이 급등했다. 어떤 종목은 조정을 거친 뒤 밀어붙여 재차 주가가 상승하고, 어떤 종목은 힘이 빠진 채 제 자리를 찾아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난달 27일 YG플러스는 블랙핑크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2시간 만에 주가가 4,655원에서 5,800원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다음날 10% 넘게 주가가 빠지며 4,715원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차트만 보면 한순간의 출렁임이지만 누군가는 수십 억을 벌고, 다른 누군가는 수십 억을 손해 봤을 것이다.

5년 연속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 중인 반도체 관련 업체 코디엠은 정반대였다. 코디엠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무상감자를 이유로 이달 14일부터 약 한 달간 거래정지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거래정지 일주일 전인 이달 6일부터 3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노광(빛으로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공정) 장비 국산화 소식이 급등의 이유라면 이유인데, 두 달간의 하락을 단 3일 만에 회복했다.

주식을 할수록, 차트를 볼수록 시장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⑤투자의 결말-개미가 실패하는 이유

#매매방 21일차. 최악의 날이었다. 전날 특허 출원으로 상한가를 쳤던 종목에 다시 들어간 것이 잘못이었다. 오전 초반 8% 가까이 오르면서 이틀 연속 상한가를 가는 듯 했는데 오후에 돌아섰다. 하루에 20만 원 이상 손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9월 30일은 주식매매방 투자에 나선 지 딱 한 달째가 되는 날이었다. 30일간의 주식 투자 결과 잔고는 478만5,666원, 평가손익은 -21만4,334원이었다.

중간에 자본금을 늘린 것이 패착이었을까. 판돈이 커지니 판단이 느려지고 손해가 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조금만 손해 봐도 안된다는 부담감이 손가락을 짓눌렀다. 500만 원으로도 이런 스트레스인데, 수천만원, 수억원을 굴리는 개미의 압박감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선물 전문 A씨는 "몇 년 전 하루에 선물로 5,000만 원 정도를 잃은 적이 있다"며 "나는 몰랐는데, 주변에서 그날 '걸어다니는 시체 같았다'고 말하더라"고 고백했다.

매매방을 나와야 할 때가 됐다. '나는 다를 거다' 생각하며 들어온 이 곳에서 손해를 보고 떠나려니 '현자타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주식은 과연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 걸까? 펀드매니저가 수익률에서 원숭이를 이기지 못하는(월스트리트 투자실험) 이 이상한 세상을 향해, 왜 사람들은 실패할 걸 알면서도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것일까?

옆 자리 아저씨의 조언처럼, 개미가 승부를 걸 곳은 장기투자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타는 내 인생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남은 478만원으로 삼성전자를 샀다. 한동안 주식을 끊겠다는 각오였다. 그런데 5분도 지나지 않아 앱을 켜 삼성전자 주가를 확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글 쓰는 순서
개미는 왜 실패하는가 (상) 한 달 간의 개미굴 체험 (하) 개미지옥을 벗어나려면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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