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무혐의' 이상보 "고통스러운 그날의 기억...나처럼 억울한 사람 없어야" [인터뷰]

입력
2022.09.30 15:15
배우 이상보 심경 고백

경찰이 마약 투여 혐의로 긴급체포했던 배우 이상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개인사로 우울증을 겪었던 이상보는 신경안정제 복용으로 오해를 사는 바람에 '마약 배우'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며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30일 오후 이상보는 본지에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검사 결과나 진행과정에 있어서 정확한 게 없고, 조서를 꾸미기도 전에 기사가 났다. '이상보가 마약했다'는 내용이 삽시간에 보도가 됐다. 살다가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실명이 거론되고 CCTV도 공개돼 도저히 서울에 못 있겠어서 아는 형님 댁에 와 있었다. 답답하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마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허위 보도로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상보는 "내가 큰 영향력을 지닌 배우는 아니지만 이거 하나로 살아왔고, 우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정확하지 않은 사안으로 이런 일을 당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람 하나를 팔다리를 잘라버린 격이 되니까 앞으로라도 이런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그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때의 기억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자다가 깨기도 하고,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상태"라고 고백했다.

미치도록 억울했던 그날의 기억

이상보는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의 기억도 떠올리며 "당시 집앞에 잠시 나갔다가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비틀거리는 상태에서 긴급체포를 당했다. 다짜고짜 수갑을 채웠다. 내가 도망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어디에 민폐를 끼친 상황도 아니었다. 비틀거리고 혼자 넘어지고 그런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런 사람에게 수갑을 채워서 체포를 한다는 것은 처음 들은 일이다.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멍도 심하게 들었고 아직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다"며 "휴대폰도 액정이 깨졌고 시계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 개념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보호자를 부를 수 없었던 건 연락처를 외우고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긴급체포 후 이상보의 집안을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나온 것은 없었다. 이상보는 "병원에 이송됐는데 검사를 수시간 받았다. 더욱 당황스러운 건 진료비를 나에게 내라고 했다. 정확히 122만 원 나왔다. 긴급체포를 당해서 끌고 간 사람에게 돈을 내라는 거다. 내가 건강검진을 받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 금액을 결제 안 하면 병원에서 나갈 수 없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때도 수갑을 차고 있는 상태였다. 잠깐이라도 풀어달라고 했다. 억울해서 도망갈 생각도 없으니까 좀만 느슨하게 해달라는데 안된다더라"며 "지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결제를 못하니까 상환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왔다"고 떠올렸다.

이튿날 오전 조서를 꾸민다는 이야기에 이상보는 집에 갔다가 경찰서에 출석하겠다고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유치장에 끌려간 그는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고, 약속했던 오전 9시가 되어도 조서를 꾸미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컸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뉴스에서는 그의 이름이 나오고 '마약 배우'라는 보도가 되고 있었다. 이상보는 "그때 나는 유치장에서 조서를 꾸미고 있었고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도 들은 적도 한 적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조사를 받은 후에도 유치장에 남아있어야 했다. 밤이 되어서야 보호자의 인도 하에 풀려날 수 있었다는 그는 "경찰이라면 우리의 목소리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분들도 직업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 "다만 앞으로는 이런 억울한 일을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경찰은 이상보가 마약을 투여한 혐의가 확인되지 않아 불송치한다고 밝혔다. 국과수가 이상보의 소변과 모발 등을 정밀 감정한 결과, 향정신성 물질 반응이 나타났지만 긴급체포의 근거가 됐던 모르핀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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