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은 '인간극장'이라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처음 대중에게 알려졌다. 전쟁고아였던 용재 오닐의 어머니를 입양한 아일랜드계 조부모의 큰 사랑도 인상적이었지만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두각을 나타낸 청년 음악가 용재 오닐의 성장 일기와 음악에 시청자들은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용재 오닐처럼 해마다 2,00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비올리스트는 해외에서도 매우 드물다. 하지만 그 희소성 때문에 오히려 '인간극장이 만든 스타'로 오인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런 용재 오닐이 지난 2020년 세계 최고의 현악사중주단인 타카치 콰르텟의 정식 멤버가 됐고 이번 주 첫 내한 무대를 갖는다. 각종 음반상을 모조리 휩쓸고 언론·관객으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는 세계 최고 앙상블의 일원으로서 한국을 찾게 된 것이다.
지난해 그는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 협주곡을 녹음한 음반으로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의 ‘베스트 클래식 기악 독주’(Best Classical Instrumental solo)' 부문 상을 받았다. 비올리스트로서는 이 부문 최초 수상이다! 2006년과 2010년에도 후보에 올랐던 용재 오닐은 세 번째로 지명된 지난해 마침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오늘은 비올라에 있어 위대한 날"이라는 의미 있는 소감을 밝혔다.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리처드 용재 오닐, 무엇이 그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을까.
20년 가까이 지켜본 관계자들, 함께 연주해 본 음악가들에 따르면 용재 오닐은 성실하고 긍정적이며 지독하게 학구적이면서 쉼 없는 도전을 조용히 이어가는 음악가다. 특히 그는 언제나 상대방의 의견을 묻고, 듣는 사람이다. 팀의 결정을 신뢰하고 거기에 자신의 성실함과 긍정성을 최선을 다해 보탠다. 독주자로서도 빛나지만 일상에서도 그는 타고난 실내악 연주자였던 것이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전곡을 조명하며 음악과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 '나와 당신의 베토벤'에는 용재 오닐이 어떤 음악가인지 가늠할 수 있는 근사한 내용이 많다. 연주로 깨닫게 된 베토벤의 매력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자신을 후계자로 삼아 악기를 물려줬던 유명 비올리스트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왜소하고 낯을 가렸던 시골소년이 기숙사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울다 지쳐 잠들던 시간, 그 모든 시름을 잊게 해준 실내악 연습 시간이 작품 해설과 함께 교차된다. 현악사중주가 비올리스트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 눌러 쓴 문장은 몇 번씩 읽게 된다.
"역할이 다른 악기 하나하나가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베토벤 현악사중주는 스승 하이든의 작품들과 다른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아마도 베토벤 현악사중주가 지닌 수많은 매력 중 평등주의야말로 나 같은 젊은 음악가들을 사로잡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한 평등주의는 작품번호 18의 4번부터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다. 이런 혁신적인 요소로 인해 현악사중주는 200여 년 전에 작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작곡된 것 같은, 단단하면서도 신선한 풋사과와 같은 매력을 발한다. 그만큼 사중주는 시간을 초월한 생명력과 자극을 품고 있는 놀라운 음악이다. 내게 이 음악은 진정한 의미에서 영원한 고전, 그 자체다."
용재 오닐은 바이올리니스트로 연주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보다는 비올라와 더 많이 닮았다. 현악사중주는 바이올린과 첼로도 중요하지만, 비올라가 중간에서 어떤 목소리로 중심을 잡아주느냐에 따라 음악적 수준이 또 달라진다. 실내악 팬들이 내성부인 비올라 소리에 특별히 귀 기울이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용재 오닐은 2007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달리는 거리만큼 성금이 모이는 자선 마라톤에도 참가했고 2009년, 2010년, 2012년 춘천 마라톤에서는 3시간 30분이라는 기록으로 완주했다. 용재 오닐의 인생은 많은 부분에서 마라톤과 닮았다. 빛나는 단거리 질주보다는 중재 역할을 하는 비올라처럼 묵묵히 장거리를 뛰고 있다. 술렁이게 하는 변주가 찾아와도 흔들림 없이 함께하는 ‘현악사중주’를 잘해냄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기뻐하고 이겨내며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타카치 콰르텟과 함께 세계 무대에서 연간 50~80회 연주하는 프로페셔널 실내악 연주자가 됐다.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에게 가장 뜨겁고 긴 박수를 보내듯 20년간 달려온 리처드 용재 오닐의 지나온 시간과 꿈, 그리고 새로운 여정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