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도 새 아파트 안 산다... '미분양 폭탄' 초비상

입력
2022.10.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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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당하는 새 아파트]
미분양, 대구 등 지역에서 서울로 북상 중
서울·수도권 미분양 2년 8개월 만에 최고
건설사 부도 등 장기침체 뇌관될 수도
尹 정부, '270만 가구 공급' 차질 불가피

추석이 코앞인 지난달 3일 동대구역 인근의 푸르지오 브리센트 견본주택. 지난해 12월 794가구에 대한 청약을 받았지만 1·2순위 청약에서 대거 미달돼, 현재 청약통장 없이도 계약금만 내면 원하는 아파트(동·호수 지정)를 고를 수 있는 '선착순 분양'이 한창이었다.

분양시장에서 무조건 줍고 또 줍는다는 '줍줍(무순위 청약)' 물량이 대거 나왔지만, 분위기는 지난해와 딴판이다. 여기서 만난 채모(50)씨는 "대구에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집값도 급락하는 추세라 줍줍 물량을 잡은 게 후회된다"고 했다. 분양 관계자는 "금리까지 치솟자 지금은 방문객이 90%나 줄어 걱정"이라고 했다.

이처럼 대규모 미분양 발생으로 아파트 계약률이 곤두박질치자 대구에선 자금줄에 비상이 걸린 현장이 수두룩하다. 아파트 공사는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과 같아서 한 번 공사를 시작하면 다 짓기 전까지 멈출 수 없다. 계약률이 저조하면 그만큼 돈이 돌지 않고, 건설사로선 막대한 건설비용을 홀로 감수해야 한다.

이날 찾은 대구 중구의 한 아파트는 2020년 12월 준공했지만 36가구 중 66%인 22가구가 아직도 비어 있다. 대구역 인근 8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 역시 입주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절반 가까이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한 분양업체 관계자는 "대규모 단지 분양이 줄줄이 대기 중인데 상품성 없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누가 사겠나"라며 "자금난에 몰린 시행사가 상당히 많다"고 했다. 10월 대구에선 경기(1만2,237가구·부동산R114) 다음으로 많은 6,400여 가구가 분양물량으로 쏟아진다.

주택시장에 '미분양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대구 등 일부 지방의 문제로 여겨졌던 미분양이 철옹성으로 통하던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까지 빠르게 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거래 침체와 함께 미분양이 격증하는 지금 상황이 장기 침체의 서막이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2009년)를 떠올리게 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미분양 1년 만에 두 배 급증

미분양은 건설사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파트 분양을 했지만 신청자가 적어 1·2순위 청약에서 미달된 주택을 일컫는다. 청약에 당첨되고도 계약을 포기한 아파트도 미분양으로 잡힌다. 아파트 완공까지 입주자를 못 구하면 가장 악성인 '준공 후 미분양'이 된다. 그만큼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라 건설사가 집값을 깎아줘도 팔리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건설사에 미분양은 애물단지나 마찬가지다.

올 들어 주택시장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미분양 주택이 빠르게 늘고 있다. 분양 완판(완전판매)이 잇따랐던 지난해 초만 해도 미분양 주택은 1만5,000여 가구(전국) 수준이었지만, 8월 말 기준 3만2,722가구로 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대구(8,301가구)·경북(6,693가구)·전남(2,503가구), 경남(2,042가구) 등 지방(2만7,710가구) 비중(84%)이 크다.

대구를 시작으로 주변 지역까지 청약시장 침체가 본격화했다는 게 업계 진단이다. 실제 올 2분기(4~6월) 기준 대구의 초기분양률(주택도시보증공사·HUG 집계)은 18%로 1년 전(98.6%)보다 무려 80.6%포인트 급락했다. 울산(35%), 강원(64%), 경북(71%), 충남(86%) 등도 같은 기간 큰 폭 하락했다. 분양하면 무조건 미분양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를 반영해 지난 8월 HUG는 대구 중구·동구·남구, 울산 울주군, 경북 경주시, 전남 광양시, 충남 아산시, 강원 평창군 등 11곳을 분양보증 사전심사 대상인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2020년 9월(11곳) 이후 최대다.

청약 불패 수도권서도 미분양 속출

미분양 사태는 더는 지방에 국한되지 않는다. 청약 불패 지역으로 여겨지던 수도권에서도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8월 말 기준 서울·수도권 미분양은 5,012가구로 2019년 12월(6,202가구)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다다랐다. 인천은 1,222가구로 한 달 만에 미분양이 배 이상(678가구) 늘었다.

지난달 1·2순위 청약이 미달돼 무순위 청약(줍줍)을 진행한 단지는 34곳인데 이 중 수도권 비중(67%)이 23곳(서울 7곳·경기 10곳·인천 6곳)으로 가장 많았다. 물론 무순위 청약이 이례적인 건 아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달라진 경향이 드러난다. 바로 대규모 청약 미달로 초기계약률이 10~30% 수준에 불과한 단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보통 업계에선 초기계약률의 마지노선을 50~60%로 잡는다. 이 수준은 돼야 건설사가 공사 과정에서 자금난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8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선보인 천왕역 모아엘가 아파트는 최근 무순위 청약 공고를 올렸다. 서울에서 두 달 만에 나온 분양인 데다 중도금 40% 무이자 혜택까지 걸어 큰 관심을 끌었지만, 일반 분양한 140가구 중 계약 체결은 11가구에 그쳤다. 본청약에서 모집인원을 채우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당첨자들이 대거 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분양 관계자는 "주변 오래된 아파트 시세와 분양가가 비슷해 나름 경쟁력을 갖췄지만 요즘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미달이 난 것 같다"고 했다.

인천에선 힐스테이트 불로 포레스트(211가구·8월 무순위), 두산위브 더센트럴(269가구·8월), e편한세상 부평역 센트럴파크(115가구·9월)처럼 메이저 아파트들도 대거 무순위 물량이 나왔다.

"오른 거 토해내는 조정기 돌입"

금융위기 이후 미분양이 정점을 찍었던 2009년(16만 가구)과 비교하면 지금의 미분양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건설업계가 바라보는 위기의식은 상당하다.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미분양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황처럼 시장의 장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①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②원자재 상승에 따른 분양가 상승 ③기존 집값 하락 등의 영향이 맞물리며 미분양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이는 5년간의 장기침체로 이어졌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현재 소비자들은 당장 분양받는 게 손해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며 "내년부터 미분양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오른 걸 토해내야 하는 조정기가 올해부터 시작됐다"며 "3년 이상의 장기침체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분양 급증이 건설경기 장기침체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지방 중견업체 중심으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자금줄 막힌 중소건설사, 대부업체에 손 벌려

분양시장이 꺾이면서 당장 중소·중견건설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 분양관계자는 "중소·중견건설사들은 금융권에서 주택사업을 위한 자금대출이 사실상 거의 막혔다"며 "대부업체에 손을 벌리는 건설사가 늘면서 사실상 대부업체만 노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올해 7월까지 문을 닫은 건설사는 7곳에 이른다.

물론 지금 상황에선 사업을 중단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주택사업 구조상 그럴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보통 대출을 끼고 땅을 산 뒤 사업을 시작하는 터라 사업을 늦추면 그만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최근 '미분양 리스크 대응방안이 없는 건설사가 상당하다'며 국토교통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전달했다. 대형건설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도 "미분양이 심해지면 수분양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나온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공언한 '270만 가구 공급' 대책도 차질이 불가피할 걸로 본다. 한 대형건설사 임원은 "정부 정책은 민간을 끌어들이는 건데 지금은 시행사들이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대책은 규제 정상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중요한 건 거래 활성화 대책"이라고 꼬집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준공 후 미분양은 7,000여 가구 수준으로 과도하지 않아 당장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게 본다"며 "다만 시장의 우려를 잘 아는 만큼 시장 상황을 잘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했다.

김동욱 기자
대구=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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