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컬럼비아 법대의 '재생에너지 수비대'... 소송·가짜뉴스에 대응한다

입력
2022.10.01 12:00
[탄소감축도시 한달살기]
<12·끝>재생에너지 위해 싸우는 법률가들
컬럼비아 법대, 공익법률지원기구 운영
미국 각지의 반기후소송 제기되면 대응
가짜뉴스 반박하는 논문 수집해 공개도

지난 기사(클릭이 되지 않으면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91514320000237로 검색하세요)에서 미국 뉴욕주가 캐나다의 수력발전소에서 재생에너지를 구매한 이야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뉴욕주엔 땅과 바람, 물이 많아서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할 공간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 내 각종 규제와 정치적 혼란 탓에 ‘해외 조달’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미 컬럼비아 법대에 따르면, 미국 50개 주에서 재생에너지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규제는 121개나 됩니다. 이 중엔 재생에너지라면 일단 금지하는 지역도 있죠. 기후위기 대응의 마지노선이 채 10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규제는 대응 속도를 지나치게 늦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컬럼비아 법대의 기후법 전문 연구기관 ‘사빈센터(Sabin Center)’는 2019년 재생에너지를 법으로 옹호하는 공익법률지원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재생에너지 법률 방어 이니셔티브(Renewable Energy Legal Defense InitiativeㆍRELDI)’입니다. 변호사이기도 한 마이클 제라드 컬럼비아 법대 교수와 미국의 대형 로펌 ‘아널드&포터’가 참여합니다.

RELDI의 주요 활동은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분쟁에서 설치를 지지하는 주민들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주로 제3자 법률기관 입장에서 법정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또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오해를 깰 수 있도록 과학적 근거를 모아 공개하고, 재생에너지 규제를 만들려는 지방 정부를 설득하기도 합니다. RELDI가 미국 내 재생에너지를 옹호하는 과정을 따라가봤습니다.


안전 수차례 검증해도 주민 반발

지난달 16일 미국 뉴욕주 동남부의 웨인스콧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영화 ‘이터널선샤인’ 촬영지로도 유명한 해변인데요. 올해 이 지역엔 132M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소 ‘사우스포크윈드(South Fork Wind)’ 설립이 승인됐습니다. 2015년부터 진행돼 7년 만에 설립 허가가 난 것이죠.

사우스포크윈드는 덴마크의 풍력발전 기업 '외스테드(Ørsted)'와 영국의 에너지 기업 '에버소스(Eversource)가 지분을 절반씩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풍력발전소가 육지에서 보이지 않도록 해변에서 35마일(약48.2㎞) 떨어진 곳에 터빈을 짓고, 이 전기를 보낼 송전선은 해저 30피트(9.14m) 아래에 묻기로 했습니다.

이는 주변 경관과 해양 생태계에 지장이 없도록 한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이미 유럽과 미국 내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수차례 연구됐습니다. 풍력발전을 지지하는 지역 주민들도 옹호 단체 '윈위드윈드(Win With Wind)'를 만들어 풍력발전의 무해함을 홍보했죠. 게다가 풍력발전에서 생산한 전기는 전부 이 지역 전력을 공급하는 데 쓰입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지역단체 웨인스콧 보존을 위한 시민들(Citizens For the Preservation of Wainscott)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해변 경관을 이유로 풍력발전단지를 반대했습니다. 이 해변이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고 많이 사용되며 사진이 많이 찍힌 공공 해변"이라며 "자연적이고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윈위드윈드에서 활동하는 지역 주민 마이클 한센은 "반대 주민들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결여돼있었다"며 "모든 전선을 지하화해 경관에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유 없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대 주민들의 행정 소송에 법률 자문

RELDI가 이 발전소를 지원해준 건 주민 간 분쟁이 소송으로 번지면서입니다. 2019년 반대 측 주민들은 뉴욕주 법원에 이스트햄튼 타운 정부를 고소했습니다. 이스트햄튼 타운 정부가 법률에 정해진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앞서 이스트햄튼 타운 정부는 송전선을 묻기 위해 바다와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지역권·easement)을 발전 사업자에게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뉴욕주의 환경성능검토법(SEQRA)이 규정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environment impact statement)가 미진했다는 것이 반대 주민들의 주장이었습니다. 만일 법원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지역권 또한 사라져 발전 시설을 설치할 수 없게 되죠.


이미 7년간 미뤄진 건설이 또다시 미뤄질 위기에 처한 겁니다. 오랜 기간 사업자들은 타운 정부와 안전한 건설을 위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었죠. 또 주 정부의 환경영향평가를 받아 이미 승인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타운 정부의 승인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니, 분쟁이 더 악화될 수 있었죠.

그러나 법률전문가인 RELDI 입장에서 반대 주민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었습니다. '주 정부의 평가를 받을 경우 SEQRA상의 환경영향평가는 예외가 된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일치된 견해였죠.

RELDI는 제3자가 사건에 전문적 조언을 줄 수 있는 미국 법 제도 '법정 조언자(amicus curiae brief)'를 활용해 법원에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게다가 RELDI를 이끄는 제라드 교수는 매년 '뉴욕 법 저널'에 SEQRA 분석 리뷰를 올리는 환경법 전문가였죠.

마이클 한센은 "이 같은 법률 전문가의 자문은 법원이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 지역은 이듬해 2월 최종 건설 승인을 받았습니다.

RELDI는 이런 식으로 재생에너지 분쟁 10여 곳에 법률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이 중 5곳에서 승소했는데, 그중 2곳은 항소가 진행 중입니다.

가짜뉴스 반박하며 재생에너지 확대하는 미국, 국내는?

RELDI의 또 다른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재생에너지 가짜뉴스를 반박한 주요 논문들을 수집해 공개하는 겁니다. 태양광과 인체 건강, 풍력발전과 해양생태계, 재생에너지 설비와 집값 등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오해를 정리한 내용들이 많죠.

이런 정보는 다른 지역 주민들이나 법률가들이 재생에너지 분쟁에 대응하는 자료로 쓰일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온갖 오해가 정치권과 언론에 오르내리는 국내 현실에서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다만 RELDI의 '소송 모델'을 국내에 도입하기엔 부작용도 있습니다. 미국 내 분쟁은 대부분 시골 전원 마을의 경관이나 집값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반면, 국내에서는 농민들의 생계 수단인 농지를 두고 분쟁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국내 현실에서 ‘법대로 가자’는 식의 해결법은 되레 재생에너지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지역 주민들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구조로 사업을 설계하는 해결책을 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오해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논의하고, 불합리한 규제나 지방 정부를 대상으로 빠르게 논쟁을 정리해가는 모습은 미국 사회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얼마나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매튜 에이젠슨 RELDI 변호사는 “기후위기 대응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급격하게 확대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에 일부 단점이 있는 것을 이해하더라도 단지 ‘완벽한 해결책’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위기감과 의지만큼은 우리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뉴욕= 김현종 기자
뉴욕= 김광영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