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낸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금 83% 썼다...연말·연초 재징수할 듯

입력
2022.09.30 21:00
분담금 1,250억 원, 지난달 말 집행률 82.7%
75% 이상 소진시 환경부가 추가 부과·징수 가능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통과 이후 옥시레킷벤키저, SK케미칼, 애경 등이 분담해 마련한 자금이 80% 이상 소진됐다. 정부는 자금이 대부분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해당 기업들에서 분담금을 재징수할 계획이다.

30일 환경부에 따르면, 이달 27일까지 총 1,219억8,700만 원의 구제급여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지원됐다. 대부분 유족 조위금(58%)과 요양생활수당(14%), 요양급여(13%)다. 2017년 특별법에 의해 18개 기업이 낸 분담금 1,250억 원에 정부 출연금(255억 원)과 이자수익 등을 합한 재원이 피해자 지원에 활용됐다.

자금 소진율은 꽤 높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확보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자금 집행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기업들이 낸 1,250억 원 중 잔액은 256억 원 남짓이다. 집행률이 82.7%에 달했다.

특별법에는 기존 징수 분담금의 75% 이상이 사용된 경우 정부가 사업자들에게 추가로 분담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됐다. 올 초 집행률이 75% 선을 넘어섰고 이를 고려해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 사이에 옥시와 SK케미칼, 애경 등 분담금 납부 대상 18개 기업을 대상으로 네 차례 간담회를 열어 추가 징수 계획을 알렸다. 환경부 관계자는 "피해자들을 계속 지원해야 하는 만큼 분담금을 더 걷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추가 징수 시기는 자금이 90% 이상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연말부터 내년 초가 유력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특별법에 따라 대상 기업들에 최대 1,250억 원까지 걷을 수 있다"며 "추가 징수 규모와 시기는 구제자금운용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담금 징수는 강제 사항이다. 기한 내 내지 않을 경우 가산금이 붙고, 그래도 안 내면 국세 체납처분으로 징수한다. 법인 자본 등을 압류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17년 첫 징수 때 기업들은 분할 납부 방식으로 3년여에 걸쳐 1,250억을 모두 냈다. 특별법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옥시는 674억 원(54%)을 일시납했고, SK케미칼(17%), SK이노베이션(10%), 애경(7%) 등이 뒤따랐다. 환경부는 구제자금에서 75% 이상을 소진할 때마다 추가 징수가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제는 옥시 같은 해외 기업의 경우 강제력 행사에 한계가 있다는 데 있다. 만약 옥시 본사인 영국 레킷벤키저가 분담금 납부를 거부하고 한국 지사를 정리한다면 정부의 추가 분담금 징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옥시는 이미 올해 4월 피해보상조정위원회의 최종 조정안을 거부한 바 있다. 옥시 관계자는 "추가 징수는 영국 본사와 논의해야 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곽주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