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이 끝난 뒤 전·현직 총리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여론 반대에도 국장을 밀어붙였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기대했던 '조문 외교' 성과를 얻지 못해 비판받고 있는 반면,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심금을 울리는 '추도사'로 일본 국민들의 이목을 단박에 끌었기 때문이다.
27일 도쿄 소재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국장에서 스가 전 총리는 기시다 총리와 입법·사법부 수장에 이은 마지막 추도사를 ‘친구 대표’로서 했다.
기시다 총리의 추도사는 아베 전 총리의 외교적 업적 등을 나열한 형식적 내용에 그쳤지만, 아베 2차 내각 시절 ‘2인자’인 관방장관으로서 7년 넘게 그를 보좌한 스가 전 총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개인적 추억을 다수 언급했다.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고, 식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눈물을 글썽일 정도였다. 추도사가 끝난 후 장례식장에선 이례적으로 박수까지 나왔다.
인터넷에선 “기시다 총리의 조사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아 중계방송을 계속 볼까 고민했지만, 스가 전 총리의 조사 때문에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는 등 스가 전 총리의 추도사에 감동했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심지어 “기시다 총리를 내리고 스가 총리를 재등판시킨다면 자민당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주간 ‘플래시’는 스가 전 총리에게 국장의 주역을 빼앗긴 꼴이 된 기시다 총리가 매우 의기소침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기시다 총리가) 완패라고 느끼는 것 같다. 너무 낙담해 있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지지율 하락보다 더 침울해 보인다’고 농담조로 말할 정도”라는 국장실행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자민당 내부에서는 스가의 부상에 불만을 표하는 시각도 있다. 정작 총리 재임 시절에는 언론의 질문에 똑같은 말만 되풀이해 내각 지지율을 깎아 먹더니, 이제 와서 추도사로 여론의 이목을 받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이다.
특히 스가 전 총리가 추도사에서 “아베 전 총리가 두 번째 총리 도전에 대해 주저하고 있을 때 야키도리(닭꼬치) 가게에서 내가 3시간이나 설득해 결심하게 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는 당내에서는 어이없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사실상 2차 아베 정권을 탄생시킨 공은 내게 있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아베와 가까웠던 정치인은 모두 출마를 적극 권했다고 한다. 당내 한 관계자는 “아베 전 총리가 3시간이나 고사했을 리 없다. 스가 전 총리의 역할은 등을 민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이나 언론과의 소통 능력 부족을 이유로, 1년 만에 단명한 스가 전 총리가 이번 국장을 정치적 부활의 계기로 여기고 추도사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가 추도한 아베 역시 총리를 한 번 그만두고 절치부심해 두 번째는 장기 집권에 성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