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고속도로가 많이 막혔다. 길이 막힐 줄 알면서도 고향 가는 길에 몸을 싣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의 힘은 가족애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고속도로 정체는 고향을 방문하는 즐거움에 비하면 그리 큰 장애는 아닌 것이다. 추석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교통 상황을 알리는 방송이 이어지고,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고속도로를 상공에서 바라 본 모습이다. 경찰청 헬기를 탄 방송사 기자들의 헬기 프로펠러 소리를 배경으로 고속도로가 얼마나 막히고 있는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들뜬다.
경기도 성남시 궁내동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는 추석 방송에 자주 나오는 단골손님이다. 그런데 이 요금소에 재미있는 착시가 있다. 첫 번째 사진은 서울요금소를 경찰청 헬기에서 찍은 것이다. 오른쪽이 남쪽으로 가는 하행선이고 왼쪽이 서울로 향하는 상행선이다. 이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로 경사가 위아래로 크게 휘어진 것처럼 보인다. 사진 아래에서부터 요금소까지는 오르막으로 보이다 요금소를 지나면서부터 다시 내리막으로 보이고, 화살표를 기점으로 다시 오르막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경사들은 모두 착시이다! 실제 이 도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편평한데 구글 어스와 같은 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왜 이런 착시가 일어나는 것일까? 답은 도로 가장자리의 윤곽선에 있다. 요금소 지점에서 많은 차량들이 속도를 줄이면서 정체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개선하려고 도로 폭을 크게 늘이는 공사가 있었고, 이에 따라 도로 가장자리의 윤곽이 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은 도로의 경사를 판단할 때 도로의 가장자리의 윤곽에서 오는 선원근을 중요한 단서로 참조하는 습관이 있다. 만일, 두 번째 사진처럼 첫 번째 사진의 양옆을 종이로 가리면 경사가 크게 감소하게 된다. 즉, 도로나 철로처럼 지면에 놓인 구조물은 평행선을 가지고 있는데 관찰자로부터 멀어질수록 두 선분의 폭이 서서히 줄어든다. 그리고 중간에 갑작스러운 경사가 있는 경우, 두 선분의 폭도 함께 변한다.
세 번째 그림은 실제로 경사가 있는 도로를 사진으로 찍은 것으로, 바로 앞 편평한 도로의 양옆의 가장자리 윤곽이 한 점을 향해 나아가다 경사가 시작될 때 다시 위로 솟구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그림의 서울요금소 사진은 바로 이런 특징을 담고 있기 때문에 경사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이런 착시는 실제 도로에서 잘 관찰하기 어렵고 사진으로만 나타난다. 실세계에서, 사람들은 두 눈을 뜨고 세상을 보고 또한 움직이면서 세상을 본다. 이 경우 입체시와 운동시차라는 강력한 단서가 작동하여 깊이와 경사를 정확히 볼 수 있다. 보통, 선원근 단서는 다른 단서들과 협동적으로 작동하여 착시를 막아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착시를 잘 경험하지 못한다. 하지만, 서울요금소를 사진으로만 볼 때는 다른 단서들이 차단되고 틀린 선원근 단서만 강조되어 착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사진에서 보이는 서울요금소와 같은 착시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학문적으로 보고된 적이 없다. 명절에 고속도로가 크게 정체되는 나라들은 더러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요금소 부근의 도로들을 확장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근 다차로 하이패스의 등장으로 서울요금소 부근의 도로 폭이 원래대로 돌아올 가능성은 있다. 서울요금소 착시는 명절에 일어나는 대규모 이동 풍습, 도로 정체를 개선해 보려는 당국의 의지, 교통 상황을 좀 더 알기 쉽게 알리려는 경찰청 헬기 조종사와 기자의 노력 등이 함께 빚어낸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