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전쟁할 돈' 떨어지나... "징집령으로 경제 사망할 것"

입력
2022.09.30 04:30
재정 적자 속 동원령 따른 군비 부담
젊은 노동자 대탈출에 생산성 '휘청'
'전쟁 자금줄' 원유는 가격 떨어져
"러시아 역사, 동원령 전후로 나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경제 삼중고’에 직면했다. 예비군 30만 명 동원에 따른 막대한 군비 부담과 징집에 저항하는 러시아인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내부 악재라면, 국제 유가 하락으로 국고에 쌓이는 자금이 줄고 있는 것은 외부 악재다. 서방은 러시아의 돈줄을 틀어막으며 숨통을 더욱 조이고 있다. 전비(戰費)를 얼마나 많이, 오래 댈 수 있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점을 감안하면, 푸틴 대통령의 무리한 징집령이 자충수가 되고 있는 셈이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러시아 경제가 안팎에서 위기에 직면하면서 ‘실탄’이 말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7개월 넘게 버티며 전쟁 자금을 조달해왔지만, 동시다발 악재가 덮치면서 휘청댄다는 것이다.

①동원령에 ‘노동력’ 사라진다

러시아가 21일 발표한 예비군 징집령은 경제적 악수였다. 전선에 새로 투입되는 병사들에게 근로자 월평균 임금의 2, 3배에 달하는 월급을 지급해야 하고, 장비와 훈련 비용도 상당하다. 러시아의 재정 여력은 크지 않다. 지난달 러시아 연방정부 예산은 3,000억 루블(약 7조4,0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노동력과 생산성 감소도 문제다. 동원되는 예비군 중 상당수는 노동자로서 민간 기업 또는 농업에 종사하며 경제를 떠받쳐왔는데, 구멍이 생긴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징집으로 약 1%의 현직 노동자가 직장을 떠날 것으로 추정했다.

동원을 피해 나라 밖으로 탈출하는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인력 손실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또 가장을 잃은 채 러시아에 남은 가족들이 현금 부족 상태에 빠져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가 더욱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소피아 도네츠 르네상스캐피털 이코노미스트는 “동원령이 소비 심리에 충격을 가하면서 올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은 약 0.5%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②경제 떠받치던 원유 수출 ‘휘청’

러시아 경제의 ‘효자’ 노릇을 했던 원유 수출에도 악재가 닥쳤다. 수출 물량이 지난달 480만 배럴에서 이달 450만 배럴로 줄었다. 영국 원유시장 분석업체 오일엑스의 닐 크로스비 수석 애널리스트는 “러시아산 원유를 사 주던 중국과 인도, 튀르키예(터키)가 수입을 줄인 탓”이라고 설명했다.

원유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26일 국제유가는 1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셈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유가가 꺾인 것은 ‘킹달러(달러 강세)’의 영향이다. 원유는 통상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가 비싸지면 원유 수요가 줄게 된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국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1~7월 꾸준히 흑자를 기록한 정부 예산이 지난달 적자로 돌아선 것은 에너지 수익 감소 때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달러가 힘을 쓸수록 유가 시세 하락은 더욱 가팔라지는 만큼 적자 행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간 원유 수출로 얻은 막대한 수익이 러시아가 전쟁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자금 줄 역할을 한 점을 감안하면, 군비를 충당할 자금원이 말라붙었다는 의미다.

③돈줄 끊는 EU, 10조 원 수입 제한

서방은 경제 제재 고삐를 더욱 바짝 죄기로 했다. 28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와 70억 유로(약 9조7,000억 원) 상당의 수입 제한 등 추가 대러 제재안을 내놨다. 수입 제한 대상에는 철강과 목재, 석유 정제 시 필요한 특수 석탄, 다이아몬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EU에서 항공, 전자부품, 특수화학원료 관련 특정 핵심기술을 러시아로 수출할 수도 없게 된다. 러시아의 경제기반과 현대화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조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는 (동원령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했다”며 “우리는 러시아가 긴장 확대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 카드가 러시아 경제에 역풍을 불러왔다는 얘기다. 러시아 경제학자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체프 포스트산업연구소 소장은 독립언론 더인사이더에 “러시아 역사는 21일 발표된 동원령 전후로 나뉜다”며 “동원령이 러시아 경제 사망과 푸틴 정권 붕괴 등 국가에 진정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