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 표현이지만 하나님의 대처가 참 어처구니가 없다. 우선 하나님은 절대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말씀을 하셨다. 자신이 지으신 인간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창세기 6:6). 전지전능한 신이 어떻게 후회하실 수가 있을까? 신학자들이 무척이나 곤혹했다고 하는 발언이다.
그러고는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홍수를 내려 땅 위의 생명을 거의 멸절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의 포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인간은 노아 할아버지와 그의 가족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한 번 우리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홍수로 파멸시킨 것이 후회되시나 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며 약속하시고 그 증표를 보여준다. "내가 구름을 일으켜서 땅을 덮을 때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서 나타나면, 나는, 너희와 숨 쉬는 모든 짐승 곧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홍수를 일으켜서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을 물로 멸하지 않겠다."(창세기 9:14-15).
다시는 어마어마한 물로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인데, 권능의 창조주라면 적어도 하늘에 강철 같은 방수막이라도 쳐서 확실한 보장을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지개! 예쁘기만 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아무것도 막지 못하는 무지개. 하나님이 참 로맨티시스트이시다. 사냥 나간 가장이 배고픈 가족들 앞에 예쁜 꽃 한 다발만 꺾어서 돌아온 격이다.
하나님 못지않게 인간은 무지개를 참 좋아한다. 조규찬이 부른 '무지개'라는 멋진 곡이 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곡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뒷산 위에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따라갔었죠." 무지개는 늘 신비롭고 영롱하며 아름답다. 순진할 때 누구든 무지개의 활 끝이 땅에 박혀있을 거라고 믿고 가까이 가보려 했지만, 잡고 싶은 무지개는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다. 무지개가 인간에게 잡힌다면? 무지개가 한없이 아름다운 건 영원히 우리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이 무지개를 걸어두시고 인간과 약속을 한 어이없는 일은, 신이 인간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도 하나님 못지않은 로맨티시스트다. 꿈꾸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 정작 손으로 잡아 가지게 되면 사람은 실망하거나 오욕을 부리다 망하기 일쑤다. 하나님은 인간을 어떤 조건에 두었을 때 가장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 잘 아신다. 하늘에 빗장을 채워 배짱이 두둑해지면, 의외로 인간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학술적 견지에서 노아 홍수의 무지개 이야기는 그저 '원인론적 설화'(aetiology)에 불과하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는 항상 비가 오고 나면 예쁘게 나타나기에, 역으로 그 원인을 설명하는 전설적 설화라는 것이다. 마을에 내려오는 '큰 바위 얼굴'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신앙적 감성이 이해하는 무지개는 전혀 다르다. 비 온 뒤 개운한 공기 위에 아름다운 일곱 색이 가지런히 흩뿌려진다. 하늘을 보고도 땅을 보고도 웃는 듯한 반월 모양 무지개는 너무나 예뻐서 행복을 준다. 그리고 신의 존재처럼 가도 가도 잡히지 않기에 더 아름답다. 상상과 꿈은 현실보다 늘 강렬하다.
우리는 바라고 원하는 것을 열심히 쫓아가 손에 꼭 쥐고 싶어 한다. 알고 이해하고 싶은 것도 많아 늘 안달이다. 결국 두 손 가득히 부여잡으면 우리는 행복할까? 손 하나는 아쉬워야 한다고 성경의 지혜는 말한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전도서 4:6). 당신이 빌 게이츠일 확률은 80억 분의 1이기에 당신의 몸과 마음은 늘 건강하고 겸손하다. 저 예쁜 여자가 당신과 결혼할 리 없기 때문에 당신의 상상은 늘 짜릿한 것이다. 혹 인생의 대박이 나셨다면 다음 경고를 듣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 "꿀을 발견하더라도 적당히 먹어라. 과식하면 토할지도 모른다."(잠언 2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