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보다 100만 년 앞선 '아르디'...인류 기원을 추적하는 한 편의 드라마

입력
2022.09.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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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에티오피아 황무지, 팀 화이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가 이끄는 화석 발굴팀은 인류의 기원을 찾는 데 귀중한 정보를 줄 만한 화석을 발견했다. 인근 암석으로 방사성 연대 측정을 한 결과 이 뼈는 440만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한때 최초의 인류로 알려졌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100만 년 이상 오래된 것이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루시’라는 애칭이 붙었듯 화이트 교수 연구팀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를 ‘아르디’라고 불렀다.

연구팀은 극비리에 아르디 화석을 연구하면서 고인류학 분야의 획기적인 발견을 계속 쌓아갔다. 15년간의 비밀스런 독점 연구 끝에 아르디가 세상에 공개되자 침팬지를 연구하며 최초의 인류를 찾으려 했던 연구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초기 인류 조상이 현생 침팬지와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을 아르디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기자 출신의 작가 커밋 패티슨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책을 구상하던 중 자료 조사 차원에서 알아보다 아르디에 점점 빠져들어 결국 책의 주제를 뒤집고 10년을 매달린 끝에 ‘화석맨’을 완성했다. 타협이라곤 모르는 집념의 고인류학자 화이트 교수의 역사적인 아르디 발견 과정을 중심으로 발굴팀과 인터뷰, 화이트 교수의 적이라 할 만한 인물들과 나눈 대화, 각종 관련 자료, 지질학·해부학·분자유전학·발생학 등 학문적 설명까지 담았다. ‘화석맨’은 학술서적이라기보다 모험가이자 탐정이며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들이기도 한 고인류학자들 간의 경쟁과 음모, 병적인 질투, 고집과 집념을 그린 한 편의 드라마에 가깝다.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묘사, 생생한 에피소드, 극적인 구성은 과학사적 발견을 하나의 소설처럼 느끼게 만든다.

고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