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집결지는 '노른자위' 땅"... 지주·포주 배만 불리는 재개발

입력
2022.09.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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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꺼진 홍등, 그들만의 돈잔치
588 등 집결지 재개발 머니게임으로 전락  
갖고 있을 땐 '캐시카우', 재개발되면 '로또'
영등포 집결지도 반복, 호가 벌써 1억 넘어
지주가 추진위원장... "이익 독식 허가한 꼴"

편집자주

밤이 되면 홍등(紅燈)을 환히 밝힌 채 욕망을 자극했던 서울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영등포 수도골목. 재개발 열풍이 불어 닥친 이곳도 몇 년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십 년간 유지된 ‘성매매 온상’ 꼬리표는 사실 국가가 방조한 것이었다. 국가는 집결지 땅 일부를 제공했고, 불법에 눈감은 사이 업주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홍등이 꺼지면, 진짜 돈 잔치가 시작된다.’

성(性)매매 집결지가 사라지면 누군가 막대한 이익을 취한다는 의미다. 실제 용산역과 청량리 588(동대문구 전농동) 등 과거 서울 유명 성매매 집결지들이 재개발됐을 때 건물ㆍ토지 소유주들은 떼돈을 벌었다. 업소를 운영하던 포주도 단단히 한 몫 챙겼다. 반면 성매매 여성들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삶터에서 쫓겨나 다른 집결지를 찾아 헤맸다.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집결지를 없애도 성 착취는 그대로인, 모순 아닌 모순이다.

"집결지는 기피? 프리미엄 특수 지역!"

“저 땅은 옛날부터 비쌌어. 큰돈 만지는 ‘특수 영업지’였잖아.”

26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 A씨는 혀를 찼다. 그가 손으로 가리킨 땅에서는 65층짜리 초고층 주상 복합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특수 영업지는 성매매 집결지를 뜻했다. 오랜 시간 청량리에 똬리를 틀었던 588은 재개발과 함께 명맥이 끊겼으나, 이면엔 엄청난 ‘머니 게임’이 도사리고 있다.

부동산 업자들은 성매매가 불법이라 늘 단속 위험에 노출돼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 성매매 영업은 건물주나 토지주가 다달이 임대료를 꼬박꼬박 챙길 수 있는 최고의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다. A씨는 “성매매 업소 한 개가 일반 술집 10개보다 더 큰 수익을 내니 임대료가 비싼 건 당연지사”라고 했다. 강남 등 번화가를 제외하고 통상 서울 이면도로 1층 점포에 책정되는 임대료는 3.3㎡당 20만 원 수준인데, 성매매 집결지 업소의 평균 임대료는 50만 원을 웃돈다고 한다.

십 수년간 임대료를 차곡차곡 곳간에 쌓으면, 집결지 땅은 ‘로또’ 대접을 받는다. 교통 요지에 자리 잡아 언젠가는 재개발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용산역도, 청량리 588도 전부 같은 길을 걸었다.

재개발이 결정되자 지주(地主)들은 속된 말로 ‘돈벼락’을 맞았다. 청량리 인근 중개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지역 지주들이 성매매 업소가 헐린 뒤 그 자리에 들어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84㎡ 기준 분양가 9억 원)를 한 채씩 받았다고 전했다. 땅이 많은 지주들은 오피스텔과 상가를 덤으로 챙겼다.

포주들 주머니 역시 두둑해졌다. 이들에게는 ‘이주보상금’이 주어졌다. 업소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청량리 588 포주들은 7,000만~1억 원의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중개업자 B씨는 “재개발 이익이 워낙 커 시행사들은 지주들에게 감정평가액을 훨씬 상회하는 돈을 주고, 포주들에게도 보상금을 후하게 쳐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돈 냄새'에 들썩이는 영등포 집결지

1년 전 재개발이 확정된 영등포구 성매매 집결지에도 벌써 돈 냄새가 진동한다. 영등포구청이 지난해 6월 영등포동4가 431-6번지 일대를 ‘영등포 도심역세권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한 뒤 이곳은 기대 심리로 들썩이고 있다. 등기부등본을 통해 확인한 집결지 한 평(3.3㎡) 가격은 2011년 1,506만 원에서 지난해 7,748만 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호가는 1억 원을 오간다.

그래도 문의는 끊이지 않는다. 땅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영등포 집결지 인근 공인중개사 C씨는 “얼마 전 집결지 바로 옆 땅이 3.3㎡당 2억1,000만 원에 팔렸다”면서 “그나마도 지주들이 땅을 내놓지 않아 매물이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영등포 집결지 지주들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는 중이다. 한 포주는 “땅값이 폭등해 임대료도 더 받겠다는 건물주와 토지주가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지금까지 월 200만~300만 원 하던 임대료에 50만~100만 원의 웃돈이 붙었다는 것이다. 철거 전까지 어떻게든 이익을 뽑아내겠다는 심산이다.

포주들은 그들대로 꿈에 부풀어 있다. 어차피 없어질 곳이니 단속이 뜸할 것이고, 눈치보지 않고 영업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바람이다. 청량리 588보다 높은 단가의 이주보상금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장밋빛 전망만 무성하다보니 최근 영등포 집결지에 새로 발을 들인 포주들도 눈에 띈다.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는 다시함께상담센터 측은 이주보상금을 염두에 둔 개발업자들이 집결지에 접근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재개발 위원장까지 꿰찬 지주 겸 포주

‘이익 독식’ 구조는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등포구청은 지난달 8일 홍모(64)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재개발 정비사업 추진위원회 설립을 승인했다. 그런데 그는 토지ㆍ건물을 갖고 직접 유리방(쇼윈도에 여성을 전시해 호객하는 형태) 여러 개도 운영해온 영등포 집결지 내 유일한 ‘지주 겸 포주’다. 도시정비법상 추진위는 조합 설립 승인 전까지 정비사업 제반 업무를 준비하는, 재개발 진행의 필수 단계다.

홍씨는 현재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돼 서울남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달 초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성매매 장소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토지ㆍ건물주 3명 중 1명이기도 하다. 10년 이상 성 착취로 부를 쌓고, 법의 심판을 앞둔 당사자에게 재개발 수익까지 몰아준 셈이다. 홍씨는 “세입자(업주)들이 작은 구멍가게라도 차릴 수 있게 보상을 해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자체는 그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구청 관계자는 “홍씨의 재판이 끝나고 형이 확정될 경우 도시정비법상 결격사유에 해당돼 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지주들의 동의를 받은 데다, 이들의 압박이 거세져 더는 미루지 못하고 승인을 내줬다는 것이 구청 측 해명이다.

김희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연구센터 연구원은 “오랫동안 성매매가 ‘필요악’ 정도로 인식돼 처벌이 약했고 국가도 방치했다”며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나쁜 착취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성매매는 새로운 집결지와 방식을 찾아 확대 재생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광현 기자
나주예 기자
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