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을 강행했다. 국장 당일인 27일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기묘한 광경이 눈길을 끌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 후 불과 며칠 만에 국장을 결정했던 때, 기시다 총리의 상징인 ‘듣는 힘’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 자민당 보수파만을 향해 발휘됐던 것으로 보인다. 연초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추천도 애초 보류하려 했지만 아베 전 총리 등이 강하게 항의하자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관계 개선도 보수파를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소극적으로 보이려는 태도 때문에 진전이 안 되고 있다. 한국 대통령실이 정상회담을 합의했다고 갑자기 발표한 것은 무례한 외교 실책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만났다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관계 정상화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었다. 굳이 언론에 “우리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해준 것”이라든가 “‘회담’이 아니라 간담회였다”고 말하며 의미를 축소한 건 유치해 보인다.
일제강점기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열악한 조건에 강제 노동을 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를 반성하고 가해 기업들이 피해자 배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것만이 피해자를 납득시켜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일본은 마이동풍이다. 현금화가 실행되고 한일 관계가 다시 최악이 되면 일본 국익에 도움이 되나. 게다가 미국이 한국·일본·대만과 ‘칩4’ 동맹을 추진하는 시대에 반도체 수출 규제를 유지하는 건 무슨 아집인가.
일본 정부는 향후 5년 동안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증가시키고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정돈은 필수적이다. 안보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 일본의 방위력 강화는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전쟁범죄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 주변국은 일본이 세계 3위의 군사대국이 되는 것을 위험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급락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눈치 보기만으론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다. 무엇이 진짜 국익인지 멀리 보고 ‘대국적으로’ 정치를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