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제2의 손흥민을 기다리며

입력
2022.09.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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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의 마지막 모의고사가 끝났다. 여전한 수비 불안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보유국'이라는 자부심과 희망을 안고 카타르월드컵까지 남은 50여 일을 기다려 볼 참이다.

두 차례 평가전에서 보여준 손흥민(토트넘)의 클래스는 역시나 남달랐다. 한국 축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원샷원킬' 골 결정력에 새삼 감탄하면서 한편으론 저런 '급'의 선수가 한 명쯤 더 있으면 어땠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손흥민의 킥은 정확하다. 손흥민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쓴다. 어느 각도에서도 슈팅 사정거리에 진입하면 공을 허공으로 날려보내는 실수 따윈 하지 않는다. 역대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들에게서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신기(神技). 그 비법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손흥민의 아버지 손정웅씨가 쓴 자서전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보면 답이 나온다. 축구 선수였지만 28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했던 손씨는 "'나처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내린 결론은 기본기였다"면서 "(아들에게) 7년간은 슈팅을 못 하게 하고, 기본기만 가지고 연습을 시켰다. 양발을 사용하게 하기 위해 양발 연습을 시키고 모든 생활습관도 왼손을 먼저 사용하게 했다"고 서술했다.

손흥민은 한국인이지만 '한국 축구'가 길러낸 선수는 아니다. 그래서 한국 선수지만 유럽 선수처럼 플레이한다. 그는 동북고 1학년이던 만 16세에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돼 독일로 유학을 떠나 선진 축구를 접했다. 1년을 지내본 손흥민은 아예 학교를 중퇴하고 독일에 눌러앉았다. 이후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로 성장했고, 2015년 세계 최상위 축구판 EPL로 이적해 지난 시즌 극적인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독일 잔류가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손흥민은 한눈을 팔지 않았다. 지금도 손흥민을 향해 겁 없이 튀어나오는 인종차별이 그때는 오죽 심했으랴. 2018년 영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난 그곳에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 언어를 구사할 수도 없었다. 단 한마디도 몰랐다. 난 혼자였고 두려웠다"고 독일 시절을 떠올렸다. '약속의 땅'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아버지의 혹독한 가르침과 자신의 눈물겨운 노력, 유럽의 선진 프로그램과 축구 시스템이 빚은 합작품. 팬과 동료를 대하는 인성과 개막 8경기 골 침묵에도 의연한 마인드까지. 그게 지금의 손흥민이다.

그럼에도 아들은 '월클(월드클래스)'이 아니라고 단언한 손씨의 '기본관'은 좀더 특별하다. 손씨는 "손흥민이 데뷔골을 넣었을 때 사람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라고 표현했지만 그 누구도 그 어떤 분야에서도 '혜성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본기가 그때 비로소 발현된 것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손흥민은 다음 월드컵 출전에 대한 물음에 말을 아꼈다. 나가더라도 4년 후면 그는 전성기를 지난 30대 중반이 된다. 제2, 제3의 손흥민은 그냥 나타나지 않는다. 손흥민이 걸어온 길을 보라. 기본기에 충실하고 승부에 매몰되지 않은 축구 조기 교육. 한국 축구가 답을 외면한다면 유망주들은 손흥민처럼 떠나려고 할 것이다.

성환희 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