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영등포'... "땅 주인은 국가였다" [성 착취, 불패의 그늘]

입력
2022.09.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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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국가가 묵인·방조한 성매매
'국가재산' 국유지, 사실상 주인 없이 방치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땅 20%, 정부 소유
성매매 업주, 가건물 짓고 불법 영업 지속
정부, 업주와 계약 맺고 대부료까지 징수
지자체 "현실적으로 철거 불가" 수수방관

편집자주

밤이 되면 홍등(紅燈)을 환히 밝힌 채 욕망을 자극했던 서울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영등포 수도골목. 재개발 열풍이 불어 닥친 이곳도 몇 년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십 년 간 유지된 ‘성매매 온상’ 꼬리표는 사실 국가가 방조한 것이었다. 국가는 집결지 땅 일부를 제공했고, 불법에 눈 감은 사이 업주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4가 431-6번지. 우뚝 선 대형백화점과 복합쇼핑몰 건너편 좁은 골목은 대낮에도 을씨년스러웠다. 조립식 패널로 지은 무허가 건축물에 전기를 연결하기 위해 전봇대에서 억지로 끌어온 전선이 어지럽게 엉켜 하늘도 잘 보이지 않았다. 골목 어귀에선 짙은 화장을 한 여성들이 지나가는 남성의 팔을 끌었다. 원룸이나 주택에 살며 성매매를 하는, 일명 ‘휘파리’ 여성들이다. 한 여성이 남성과 잠시 흥정하더니 골목 안으로 함께 사라졌다. 서울의 마지막 ‘성(性)매매 집결지’, 영등포 ‘수도골목’ 풍경이다.

나라 땅서 버젓이 성매매 영업

수도골목이란 명칭은 지금은 없는 영등포역 앞 수도여관에서 유래했다. 수도골목을 비롯한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3년 뒤면 지도에서 자취를 감춘다. 2018년부터 영등포역 일대 환경 개선에 착수한 영등포구는 지난해 6월 이 일대를 영등포 도심역세권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으로 정했다. 이르면 2025년 최고 44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일부 건물이 이주를 위해 문을 닫으면서 골목은 더 썰렁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엔 ‘사람’이 있다. 성매매 영업을 하는 146명의 여성과 성을 사러 찾아오는 남성들이다.

아직 휘파리를 떠나지 못한 성매매 여성 A씨를 만났다. 그는 불법 가건물에서 먹고 자며 일한다. 당연히 등기부등본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대화 도중 A씨가 뜻밖의 말을 했다. “이 근방에 나라 땅이 천지야.” 건물이 세워진 토지 일부가 국가 소유라는 것이다.

미심쩍었지만 토지대장을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다. 조각조각 쪼개진 필지 목록을 하나하나 검색하니 일부 필지의 소유자가 ‘국(國)’으로 표기돼 있었다. 국유지라는 얘기다. A씨는 “우리 건물주 말고도 국가 땅에 불법 건물 지어놓고 (성매매 영업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국가가 얼마나 많은 성매매 집결지의 ‘지주(地主)’인지 확인해 봐야 했다. 조사는 지난했다. 이곳에 지번이 부여된 건 80여 년 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 때다. 광복 후 지금껏 변변한 토지 측량 한 번 진행되지 않은 탓에 필지 주인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현장을 찾아 지번을 무시한 채 무분별하게 세워진 건물ㆍ구조물을 등기부등본 및 토지대장과 일일이 대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등포 성매매 집결지 170여 개 필지(4,158.5㎡) 가운데 국가 지분이 포함된 토지가 약 860㎡(공동소유 지분 포함), 무려 20.6%나 됐다. 나라 땅에서 수십 년 동안 버젓이 불법 성매매가 이뤄졌던 것이다.

사실상 '임대료' 받으며 성매매 방치

놀랄 일은 또 있다. 땅 주인 기획재정부는 일부 토지에서 대부료까지 챙기고 있었다. 기재부가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성매매 영업장소로 사용된 국가 땅 가운데 92㎡(공동소유 지분 포함)가 2013년부터 올해 5월까지 대부계약 상태였다. 대부계약이란 국유지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한 일종의 임대차계약을 말한다.

계약 주체는 2013년 기재부로부터 국유재산 관리업무를 위탁받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대부계약을 하고 비용을 치른 사람은 8명이었다. 계약서에는 명목만 상가, 주택 등으로 기재됐을 뿐, 실상은 성매매 업소였다. 캠코는 이 기간 토지주 등으로부터 총 4,864만7,480원의 대부료를 걷어갔다. 1㎡당 5만2,000원 수준이다. 나라가 ‘헐값’에 넘긴 국유지가 성매매 공간으로 쓰인 것이다.

한국일보는 기재부와 대부계약서를 쓰고 국유지에 가건물을 지어 불법을 일삼은 유모(53)씨의 행방을 추적했다. 유씨는 포주였던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이곳에서 성매매 영업을 하고 있다. 수도골목에선 “유○○ 삼촌 모르면 간첩”이란 말이 오갈 정도로 유명 인사다. 그는 계약 당시 “국숫집(포장마차)을 운영한다”고 했지만, 실제론 2층과 1층 가건물을 세워 6개의 쪽방을 만들었다.

이 중 하나는 수년 전 한 성매매 여성에게 팔아 1억5,000만 원의 수익을 챙겼다. 나머지 가건물에는 지금도 여성 4명이 3평(9.9㎡)짜리 방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다. 여성들은 주거와 영업 대가로 유씨에게 월 150만 원을 낸다. 4명의 1년 임대료를 합치면 7,200만 원이다. 지난 10년간 유씨가 국가에 지불한 대부료(연간 17만~25만 원)의 200~400배에 달하는 폭리를 취한 셈이다.

캠코는 그간 성매매 영업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캠코는 3년 전 수도골목에 불이 났을 때 유씨의 포장마차가 소실된 것으로 판단하고 2020년 5월 대부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씨가 무단점유를 지속하자 그해 8월과 지난해 4월, 올 9월 등 3차례에 걸쳐 총 900만 원의 변상금을 부과했다. 이때까지도 가건물이 성매매 장소로 활용된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유씨는 여전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배짱을 부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에 지불하는 변상금에 비해 성매매 여성들에게서 거둬들인 월세 수입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유씨의 해명을 들으려 여러 차례 접촉했으나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기재부 "몰랐다"… 관리 사각지대 국유재산

유씨뿐 아니라 캠코와 대부계약을 맺은 국유지 중 성매매 영업장소로 사용된 필지는 몇 개 더 있다. 그러나 캠코 측이 유씨 외에 변상금을 부과한 필지는 없다. 다른 곳에 있는 가건물도 성매매 영업 장소로 쓰인 건 물론이다.

캠코 관계자는 27일 “(성매매 영업을 하는) 토지는 극히 일부 면적, 단독사용이 불가능한 자투리 땅”이라며 “현장 실사에서도 영업 활동을 추정할 간판 등이 없어 목적 외 사용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여기에 필지가 국가 단독 소유가 아닌 공유지분으로 얽혀 있어 제재가 어렵다고 캠코 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본보 재가 시작되자 캠코는 나머지 필지들의 대부계약을 전부 해지했다.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단속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캠코는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국유재산 활용 현황 등 실태 조사를 자세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재부도 감독 부실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기재부 국유재산관리과 관계자는 “국유재산 일부라도 성매매에 활용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국유지를 무단 점유해 발생하는 불법행위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국유재산 사용실태를 점검해 전국 국유지 관리 현황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김영진 의원은 “국가 재산을 총괄하는 기재부가 캠코에만 맡겨놓고 국유지를 돌보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지자체도 무단점유 알면서 나 몰라라

지자체는 떳떳할까. 수도골목을 빠져나와 왼쪽으로 돌아서면 차량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도로가 나온다. 이 길 양옆으로 속칭 ‘유리방’이 늘어서 있다. 유리문 안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호객하는 형태의 업소다. 커튼이 길게 드리워진 낮엔 문 닫은 상가처럼 보이지만 오후 8시가 되면 붉은색 조명이 켜진, 말 그대로 ‘홍등가’로 변신한다. 휘파리는 주로 중장년, 유리방은 20, 30대 여성들이 종사한다.

문제는 유리방을 끼고 있는 일부 도로 역시 영등포구청 관할이라는 점이다. 지자체 땅도 성매매 장소로 활용된 것이다. 한국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무단도로 점용료 현황에 따르면, 유리방 10곳이 구청 관할 도로인 영등포동4가 403-3, 440-9번지를 약 191.5㎡가량 무단 침범하고 있었다. 구청도 이런 사실을 알고 해마다 변상금을 받아 챙겼다. 지난해 징수한 변상금만 6,331만1,000원이다. 지자체가 돈을 받고 성매매를 묵인ㆍ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유리방 건물주들도 성매매 수익이 훨씬 많기 때문에 변상금을 기꺼이 지불하고 영업을 강행하고 있다. 건물주에게 월세 200만 원을 내는 유리방 포주 김모(56)씨는 “임대한 13.2㎡ 중 약 5㎡가 구청 관할 도로를 침범하고 있다”면서도 “구청에 내는 변상금보다 나한테 받는 월세가 더 많은 데 어떤 건물주가 포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유리방 건물주 B씨 역시 “다 쓰러져가는 가건물에 월세 수백만 원을 내고 들어올 세입자가 (성매매) 업소 사람 말고 또 있겠느냐”고 했다. 건물주 입장에서 성매매 영업은 철거 전까지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인 셈이다.

구청은 불법을 알면서도 가건물이나 유리방 철거를 꺼리고 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거주자 인권도 있고, 성매매 종사자들도 생존권을 주장해 마구잡이 철거를 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그나마 변상금을 부과하는 게 현실적 대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은 성매매 업주들의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 많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을 지원하는 다시함께상담센터 김민영 소장은 “성매매 집결지는 건물주, 업주, 주변 상권이 모두 직ㆍ간접적으로 범죄 수익을 취한 공간”이라며 “이제라도 업주와 건물주를 처벌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 대책을 정부와 지자체가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주예 기자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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