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고·사태 수습의 한 예

입력
2022.09.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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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 타이레놀 테러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은 1955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돼 1960년 미 식품의약국(FDA)에 의해 의사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승인받았다. 타이레놀은 아스피린과 함께 해열진통제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가정 상비약이 됐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백신 후유증 완화제로 특히 주목받고 있다.

1982년 9월 29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만 12세 소년(Mary Killerman)이 독극물 중독 증상으로 급사했다. 부검 결과도 나오기 전인 다음 날, 27세 청년이 유사한 증상으로 병원에서 숨졌고, 간병하던 남동생 부부(각 25세, 19세)도 형 집에서 타이레놀을 복용한 뒤 역시 숨을 거두었다. 경찰은 즉각 약통을 수거해 성분 분석을 통해 청산가리(potassium cyanide)가 섞인 사실을 확인했다. 그 사실을 통보받은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사는 문제가 된 고용량 캡슐형 타이레놀 제품 생산라인을 멈추고 병원과 약국 등에 주의를 촉구하며 제품 전량 수거에 나섰다. 타이레놀 광고도 중단했고 대신 소비자들에게 복용 자제를 당부했다. 그 며칠 사이 일리노이 시카고 권역에서 7명이 숨졌지만, 제약사의 적극적 대응 덕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은 대대적 조사를 벌였지만, 제약사에 협박 편지를 보낸 모방범 등 일부만 체포했을 뿐, 진범도, 범행 동기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 시기 시카고에 거주한 적이 있던 테러리스트 ‘유나바머(본명 테드 카친스키)’도 용의선상에 올라 FBI 조사를 받았다.

존슨앤드존슨사는 타이레놀 캡슐형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모두 알약 형태로 변경했고, 포장 강도도 쉽게 뜯지 못하게 강화하는 등 안전 조치를 취했다. 또 “약을 범죄에 악용하는 과정에 제약사가 개입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지만, 우리 제품으로 인해 비극을 겪은 유족들에게 뭔가 할 수 있기를 원한다”며 유족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배상했다. 업체는 큰 손해를 봤지만, 이 과정에서 오히려 소비자 신뢰를 얻었고, 매출도 금세 회복됐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