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만 쓰던 LNG… 탈러시아 외치는 유럽까지 눈독

입력
2022.09.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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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배관 잠그자 독일 등 LNG로 선회
공급 그대로인데 수요 급증…역대 최고가
동아시아 중심 시장 구조에 대변혁 예고

독일은 올해 3월 북해 연안 브룬스뷔텔에 연간 80억 세제곱미터(㎥)를 처리하는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천연가스는 기체에서 액체로 바뀌면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에, 배로 운송하려면 액화 처리가 필수다. LNG 터미널은 탱커를 세워두는 정박시설, 천연가스를 내리는 하역시설, 기체로 변환하는 기화시설 등으로 구성된 종합 설비인데, 막대한 투자 비용이 투입되는 대형 시설이다.

그동안 주로 배관(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수입하던 독일이 굳이 거액을 들여 LNG 터미널을 확충하려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가스 수출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PNG)를 쉽게 수입했지만, 천연가스 사용량의 55%를 수입하던 러시아를 믿을 수 없게 되자 국내 가스 수요를 LNG로 충당하려는 것이다.

LNG로 눈을 돌리는 유럽 국가는 독일만은 아니다. 네덜란드가 바다에 떠 있는 선박형 LNG 터미널(FSRU)을 엠스하벤에 도입하기로 하는 등, 올해 6월 기준으로 유럽에서 추진 중인 FSRU 프로젝트는 17개에 달한다. 실제 유럽 지역 LNG 수입량은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유럽연합(EU) 28개국에 공급된 러시아산 PNG는 450억 ㎥로 전년 동기보다 210억 ㎥ 감소했다. 유럽은 대신 220억 ㎥의 LNG를 수입하며, 부족분을 모두 LNG로 충당했다.

이렇게 유럽이 LNG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스 수요 대부분을 LNG에 의존하는 한국은 갈수록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그동안 유럽은 액화할 필요 없이 기체 상태로 배관을 타고 오는 PNG에 의존했고, 지리·지정학적 이유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어려운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 정도만 LNG를 선호해 왔다.

소비하는 나라가 한정돼 있어, 그동안 LNG 시장은 다른 에너지에 비해 안정적인 수급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이 LNG 확보에 나선 지난해 9, 10월을 기점으로 LNG 현물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20년 2달러에 불과하던 LNG 국제 가격은 올해 들어 한때 80달러를 넘어서는 수급 구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 학장은 "지난해 유럽 수요가 급증하면서 유럽 가격이 아시아 가격을 추월하는 등 불안한 모습이 감지됐다"며 "결국 아시아 가격에까지 영향을 주게 돼 북반구 나라들이 겨울에 접어들면 가격 상승의 힘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국가들이 시장에 진입한 탓에 높아진 LNG 가격은 쉽게 낮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원희 한국가스공사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동향보고서를 통해 "올해 LNG 국제 공급은 지난해보다 2,100만 톤 증가하지만 유럽의 LNG 수요가 3,000만 톤 증가했다"며 "유럽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어서 LNG 현물 가격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럽의 LNG 선호가 장기 추세로 굳어지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27년까지 러시아산 PNG 수입을 전면 중단할 계획이다. 친환경 재생에너지 비중도 확대하기로 했지만, 결국 부족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LNG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잠잠해지더라도 LNG 시장의 경쟁자는 이전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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