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무단 처형과 고문, 성범죄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증거를 유엔이 다수 확보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최근 수복한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고문으로 숨진 시신을 여럿 확인했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 출석한 에릭 모스 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우크라이나에 파견된 조사팀이 수도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하르키우, 수미 등 4개 지역을 대상으로 집중 조사를 벌인 결과,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가 자행됐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조사팀은 4개 지역 마을 27곳과 구금시설, 집단 매장지 등을 현장 조사했고, 피해자와 증인 150명 이상을 면담했다. 조사팀은 각 지역에서 수많은 처형이 무단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구타와 전기충격 등 고문이 이뤄진 증거도 확보했다.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성범죄 피해 증언도 다수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팀이 증거를 확보한 전쟁범죄 가운데 대다수는 러시아군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군인을 부당하게 대우한 사례도 2건 확인됐다.
조사팀은 처형과 성범죄 외에도 민간인 강제 이송이나 실종 사건 등을 대상으로 범위를 넓혀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현재 조사팀은 16개 마을과 정착촌에서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내년 3월 최종 보고서 제출을 목표로 전쟁범죄 관련 책임자와 가해자로 의심되는 인물에 관한 명단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 정부도 최근 러시아로부터 탈환한 하르키우주 도시 이지움에서 발견된 집단 매장지 발굴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발굴된 시신은 모두 436구로, 그 가운데 30구에서는 고문 흔적도 확인됐다. 희생자 대부분은 민간인으로 추정된다.
올레그 시네구보우 하르키우 주지사는 “목에 밧줄이 걸리고 손이 묶인 시신이 있었고, 사지가 부러지거나 총상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부 남성은 거세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 모든 것이 침략자들이 이지움 주민에게 가한 끔찍한 고문의 증거”라고 비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는 부차에서 저지른 짓을 이지움에서 반복했다. 우리는 하르키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 세계가 이에 대해 대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이지움에 현장 조사팀을 보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