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첫 유엔총회 참석이 매끄럽지 못한 일정과 비속어 노출로 인해 비판받고 있는 가운데, 행사를 관찰한 전직 외교관 여럿은 비속어 문제보다는 행사와 의전 전반에 있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미·한일 정상회담 성사에만 열중하다 보니 뒷말을 낳았다는 것이다.
오준 전 주유엔 대사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행사장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한 후 퇴장하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에는 타격이 있겠지만, 외교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라고 말했다.
오 전 대사는 "아무도 사람들이 듣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한 말이 들리게 된 것인데, 이런 것까지 어떤 외교적인 문제로 삼는 경우는 과거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 노출된 것과 같은 사건을 영어로는 '핫 마이크'라고 표현한다. 녹음이나 촬영이 되는 줄 모르고 말했다가 외부로 발언이 새 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종종 발생한다. 오 전 대사의 설명대로 실제 외교 현장에서는 실수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편이나, 사안과 내용에 따라서는 각국의 정치와 국제 경제에 영향을 미친 경우도 없지 않다.
오 전 대사는 비속어와는 별개로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 행사 진행과 의전 문제가 노출됐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봤다. 그는 "외교적 성과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쳐야 나오는 것이다 보니 외교 현장에서는 행사와 의전이 부각되는데, 그런 면에서는 이번 순방 행사가 좀 잘못된 게 맞다"고 말했다.
특히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가 결국 '48초 스탠딩 환담'이 된 한미 정상회담의 경우 "발표가 너무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오 전 대사는 "각국 정상이 유엔에 가면 꼭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두 명인데 하나는 유엔 사무총장이고 하나는 미국 대통령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회원국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 만나자는 정상은 다 만나준다"면서, 이와 달리 "미국 대통령은 회원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아예 안 만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우리가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됐다 이런 보도를 보고, 현안이 많아서 그렇게 됐나 했는데 발표가 너무 성급했다"면서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회담 가능성을 얘기했으니까 그걸 '성과'로 미리 얘기한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정확하게 열릴 것인지 여부를 끝까지 확정짓지 못한 채 만남 자체를 만들려다 보니 '48초 환담'이 됐다는 것이다. 오 전 대사는 "이렇게 너무 외교 성과에 연연하면 외교적인 실수라든가 진행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게 된다"라고 말했다.
오 전 대사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간 회동의 경우 "원래 유엔에서 정식 회담은 없고 보통 풀 어사이드(부대적인 회담)로 표현하는데, 우리 쪽이 먼저 만나기로 했는데 일자하고 장소만 정하면 된다고 얘기했고, 일본은 그걸 먼저 얘기하면 어떻게 하냐, 이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라고 관측했다. 그는 "한 번의 정상회담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이 회담 역시 너무 조급하게 접근하지 말고 만남 자체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접근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같은 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강창일 전 주일본 대사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그는 "회담이다, 약식회담이다라고 표현하기보다 비공식 조우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 "바쁘다고 지나가다가 시간도 있고 해서 잠깐 들러 악수해서 20, 30분 대화하고 나갔다, 이렇게 간단히 설명하면 된다. 왜 이렇게 문제를 키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 전 대사는 일본 측에서 테이블도, 우리나라 국기도 준비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참 무례하다. 우리가 구걸하는 것처럼 비치게 하고 자기들은 기분 좋을 건가"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원인 제공을 했다"면서 한국의 대통령실에서 사전에 한일 회담을 한다고 발표한 것 역시 "외교적 결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번 면담을 사전에 공개한 것이 일본의 기시다 총리에게 정치적인 부담을 안겼고, 그 결과 일본이 무례한 태도를 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비공식으로 대화하는 것인데, 이렇게 (먼저 공개하게) 되면 기시다 총리도 내부에서 혐한파, 반한파의 공격을 받게 된다. 그러니 기시다 총리도 화가 나서 안 만나면 될 거 아니냐고 하지 않았나"라는 것이다.
강 전 대사는 한일 정상 간 면담 자체가 외교적 의미가 있는 점은 인정했다. "외교 장관끼리 서로 지금부터 잘 해 나가자는 것은 성과물이고, 양국 정상이 서로 악수라도 했다면 양국 국민들이 마음이 편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과정이 좀 잘못돼서 그런 만남의 의미 자체도 희석돼버리고 퇴색돼 버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