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미국 조지아주(州) 커머스 SK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한국일보 신년기획 ‘무기가 된 경제, 21세기 세계대전 미중 경제안보 현장을 가다’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현지에선 조 바이든 행정부와 조지아 주정부의 ‘미국 경제 우선주의’, ‘바이 아메리칸’ 기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21 회계연도에 조지아주가 한국에서 유치한 투자만 19건이나 됐다. 연방정부 역시 공급망 점검과 입법 지원으로 경제안보를 적극적으로 챙기는 분위기였다. 이런 내용을 담아 한국 정부에 미리 경고장을 날리는 보도를 했다.
정부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지난해부터 경제안보 현안에 주목했다. ‘미국의 주요 대외정책 수단 바로 알기’ 보고서 등을 발간하며 미국의 과학기술 강화 입법 추진, 수출통제 움직임 등을 미리 경고했다. 조태용 주미대사도 지난 6월 부임 직후 대사관에 경제안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중점 과제로 이를 챙겼다. 그러나 이런 현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담긴 한국 차별 조항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문제는 법 통과 전후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인사들을 미국에 잇따라 보내 항의, 협의를 이어 갔다. 국장급 실무대표단에 이어 통상교섭본부장, 외교부 차관, 산업부 장관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고위 인사들이 워싱턴을 찾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 현지 인사는 “예산 관련 법안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미 행정부가 할 일은 거의 없는데도 엉뚱한 곳만 두드리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외교부와 산업부의 조직 앙금을 아우르며 이 문제를 해결할 범정부 컨트롤타워는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가. 용산 대통령실이, 총리실과 국무조정실이, 경제안보와 관련해 어떤 디테일을 챙기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지난달 방한했던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윤석열 대통령 면담을 주미대사관 등이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이 실세를 ‘꺼진 불’ 취급하며 냉대할 때부터 알아봤다. 경제안보 실리를 놓치고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윤석열 정부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