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31)은 검찰이 징역 9년을 구형한 직후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한 달 동안 피해자 정보를 알아내고, 옛 거주지에 다섯 차례나 들르는 등 치밀하게 준비하며 최적의 범죄 타이밍을 엿봤다. 이 기간 피해자 보호에 필요한 안전장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런 수사 내용을 근거로 ‘계획 범죄’로 결론 내리고 21일 전주환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등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전주환이 피해자 A(28)씨를 살해하기로 마음을 굳힌 시점은 8월 18일. A씨가 지난해 10월 불법촬영, 올 1월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그를 고소해 징역 9년 구형을 받은 날이자, 범행(14일) 한 달 전쯤이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주환을 송치하면서 “피의자는 중형을 받은 게 피해자 때문이라는 원망에 사무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결심이 서자 전주환은 즉각 준비에 착수했다. 먼저 구형 당일과 이달 3일 직장인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에 접속해 A씨의 옛 거주지 주소를 확인했다. 피해자가 이사 간 줄 모르고 5, 9, 13일에는 직접 찾아가 주변을 배회했다.
A씨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자 전주환은 14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이날 처음 흉기를 소지한 것만 봐도 더는 범행을 미루지 않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도피 및 검거 회피를 위한 나름의 조치도 여럿 취했다. 그는 오후 1시 18분쯤 은행에서 1,700여만 원을 인출하려 했지만,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직원 제지에 실패했다. 이후 자택에 들러 흉기와 함께 양면 점퍼와 샤워캡, 장갑 등을 챙겼다. 경찰은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수사 결과, 휴대폰에 위치정보시스템(GPS) 조작 애플리케이션도 깔려 있었다.
전주환은 두 번 더 피해자의 옛 집을 방문했으나 성과가 없자, 곧장 일회용 승차권을 구입해 A씨의 근무지인 신당역으로 갔다. 수사팀 관계자는 “범행 전엔 ‘만나서 빌어야겠다’ ‘여차하면 죽여야겠다’와 같은 복합적 감정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범행 당일엔 대화 시도 없이 바로 살해했다”고 말했다.
전주환의 범행을 막을 기회는 적어도 네 차례가 있었다. ①지난해 10월 A씨가 전주환을 첫 고소했을 때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법원은 기각했다. ②올 1월 피해자가 재차 고소했지만 경찰은 영장 신청은커녕 전주환을 유치장에 구금하지도 않았다. ③스토킹 범죄가 일어났을 때 뒤따라야 하는 가해자 위험도 평가 역시 생략됐다. ④교통공사 측은 직위해제된 전주환이 피해자 정보가 담긴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합의 요구 메시지가 대부분이라 (범죄) 위험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이날 오전 7시 30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서울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온 전주환은 “제가 진짜 미친 짓을 했다”며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범행 다음 날(15일) 예정된 재판에 출석하려 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답한 반면, 범행 후 도주 시도는 부인했다. 범행 당일 거액을 찾으려던 이유에 대해선 “부모님께 드리려고 했다”고 밝혔다. 전주환은 수사 과정에서 비교적 협조적이었다고 한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최장 20일간 보강수사를 거쳐 전주환을 기소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