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성적순이 아닌 것처럼 국가 순위가 국민의 행복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참고가 된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구매력 평가 환율을 기준으로 할 때 2021년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이 발표된 226개국 중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25개국에 불과하다. 우리는 스스로 한국이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만 인구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많은 나라는 27개국밖에 없다. 인구와 소득수준을 종합했다고 볼 수 있는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큰 나라는 14개 국가에 불과하다. 안 믿어질지 모르겠지만 우리보다 인구가 많으면서 1인당 GDP도 높은 나라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4개뿐이다. 한편, 영국의 저명한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민주화 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보다 높은 나라는 15개뿐이다. 이런 긍정적인 순위들을 종합해보면 우리보다 인구가 많으면서 1인당 GDP도 높고 또 민주화 지수까지도 높은 나라는 전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 중에 독일과 영국뿐이다.
이렇게 몇 개 순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완벽한 나라와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지만 곧 망할 것처럼, 아니면 망하면 좋겠다는 듯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자괴감에 빠질 때가 아닌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무역 강국과 경제 강국을 넘어 문화 강국의 이미지까지 굳어지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어 가는 현재 모습이 낯설지는 몰라도 엄연한 현실이다. 순위를 매기기 어려운 국가의 매력이라는 면에서도 한국은 역사상 일찍이 누리지 못했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재작년과 작년의 미국 아카데미상 수상과 올해 칸영화제 수상, 그리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까지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여러 분야에서 앞서 있다는 말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사례를 주변에서 찾기 어렵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일찍이 김구 선생님께서는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 이제 정말 한국이 그런 역할을 맡을 만큼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타까운 순위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아서 OECD 국가 평균의 세 배에 달한다. 또한 OECD 주요 회원국 중 남녀 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하다. 매년 발표되는 부패인식 지수에 따르면 부패가 없는 나라가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고 할 때 한국의 순위는 32위에 머무르고 있다. 청렴도에서도 자랑할 만한 모습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건전한 상식도 뿌리 깊이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안타까워서 인정하기 싫은 모습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사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류 드라마나 영화는 우울하지만 인정해야 할 현재 한국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혹은 은유로 그려내고 있다. 그런 솔직한 모습이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제 헬조선을 외치는 극단적인 비관도, 한국민은 우수하기 때문에 다 잘될 거라는 식의 생물학적 근거가 희박한 낙관도 거두고 제도와 관습으로 우리가 스스로 약하다고 여기는 인권 존중, 차별 철폐, 청렴, 다양성 수용 등의 분야를 개선하는 데 힘을 모아야겠다. 우리는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인정욕구에 목마른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만한 모습을 만들기 위한 내적 동력으로 움직여야 할 선도 국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