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택소노미, EU보다 '친환경 원전' 인정기준 문턱 낮다... "원전 위한 아전인수"

입력
2022.09.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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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원자력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포함시키면서 당초 참고했던 유럽연합(EU)보다 폐기물 처리·안전성 관련 기준을 느슨하게 제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 이후 불과 9개월 만에 방침을 바꿔 원전을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환경부는 다음 달 대국민 공청회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지만, K택소노미의 원전 포함 여부는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다.

"EU도 원전 넣었다"... 9개월 만에 K택소노미 들어온 원전

환경부는 20일 K택소노미 개정안 초안을 공개하면서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게 된 것은 국내외 상황을 반영한 결과일 뿐,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님을 강조했다. 9개월 전 K택소노미 지침서 발표 때까지만 해도 환경부는 원전의 K택소노미 포함에 유보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일각에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책 방향을 바꾼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다만 환경부는 "K택소노미 지침서 발표 당시 원전은 국제 동향과 국내 여건을 고려해 최종 포함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면서 "이번 초안도 EU 택소노미 체계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신규건설·계속운전 원전 인정 조건, EU보다 느슨

그러나 원전 신규건설과 계속운전의 경우 친환경은 아니지만 탄소중립을 위해 불가피한 활동으로 보고, 한시적인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대신 조건을 제시했는데, 이 기준이 EU보다 상당히 느슨하게 설정됐다. 이 때문에 원전 산업 활성화라는 현 정부 입맛에 맞춘 '아전인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두드러지는 부분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이다. EU는 고준위 방폐장을 2050년까지 가동할 세부계획을 갖추도록 정한 반면, 우리나라는 기한과 상관없이 방폐장 세부계획과 이를 담보할 법률만 있으면 된다고 정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유럽은 고준위 방폐장에 대해 논의를 해왔고 진도가 많이 나가 있음에도 구체적 이행이 어려운 상황인데, 한 발자국도 못간 우리나라가 언제까지 짓겠다는 명시도 없이 세부계획과 이를 이행할 법을 만들겠다는 내용만으로 어떻게 방폐장을 설립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고준위 방폐장은 전 세계적으로 1983년 사업에 착수한 핀란드만 2025년 가동을 예정하고 있다.

아울러 EU는 노심(원자로의 중심부) 냉각기능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건전성이 장시간 유지되는 사고저항성핵연료(ATF)를 2025년부터 적용하도록 했지만, 우리나라는 계속운전 원전에 대해 2031년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또 계속운전 원전의 허가 기한을 EU는 2040년으로 설정한 반면, 우리나라는 2045년으로 5년 더 길다.

"국내 현실 반영한 결과... 의견 수렴할 것"

환경부는 국내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택소노미는 녹색자금조달을 위한 자발적 지침이라, 실정에 따라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방폐장의 경우 EU는 여러 국가의 연합체라 개별 회원국에 설립 계획 마련 기한을 준 것이지만, 우리는 정부 계획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법 제정을 추가로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향후 논의를 통해 세부적인 조건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킨다는 기조의 변화는 없다는 입장이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원전 건설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어 조속한 온실가스 감축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서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시키면 원자력에 녹색 투자가 집중돼 현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필요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정체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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