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암 치료 등을 위해 세상에 없는 특별한 신약 개발에 나섰다.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 4명이 공동 창업한 신생기업(스타트업) 포트래이는 인공지능(AI)으로 생체 정보를 분석해 신약 개발을 돕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이대승(37) 대표는 힘들게 공부한 안과 전문의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과연 무슨 약을 만들길래 의사까지 그만뒀는지 서울 종묘 인근에 위치한 포트래이 연구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사연을 들어 봤다.
이 대표는 고교 시절 프로이트에 심취해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진로 고민을 의대에 들어가서 했어요. 전공으로 심리학과 관련 있는 정신의학도 생각했으나 환자를 다루는 것이 힘들어 보였어요. 그래서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안과를 택했어요. 평생 안과 의사로 사는 게 목표였죠."
생각이 바뀐 것은 군의관 시절이었다. 그는 2015년 국군수도병원에서 안과장으로 군의관 복무를 하면서 블록체인을 알게 됐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혼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시스템을 만들었죠. 아프리카 사람들이 글을 써서 올리면 암호화폐 스팀을 보상으로 줬어요. 2년 동안 60명을 후원했죠. 이 일을 하면서 의료행위는 1 대 1이지만 정보기술(IT)을 활용하면 혼자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이후 그의 인생은 의사에서 사업가로 급선회했다. 2016년 제대 후 첫 번째 회사 오딘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집마다 깔려 있는 무선인터넷(와이파이)을 사용하지 않을 때 타인에게 빌려주는 사업이었어요. 와이파이의 에어비앤비 같은 사업이죠. 2016년에 창업했는데 잘 안됐어요.”
2019년 회사를 그만두고 페어스퀘어랩이라는 블록체인 회사에 합류해 IT기획자로 일하다가 미국 제약사의 디지털 건강관리 자회사로 옮겼다. “사명을 밝힐 수 없지만 그곳에서 미국 AI팀과 1년여간 의료 데이터를 연구하는 일을 했죠. 거기서 현재 회사를 창업하게 된 결정적 일을 겪었어요.”
신약 개발 과정에서 누구에게 적용할지, 다른 약보다 얼마나 효과가 좋을지 모르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서울대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로 일하며 포트래이를 함께 창업한 나권중 이사가 연구하던 공간전사체 이야기를 들려주며 창업 제의를 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죠. 신약 개발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답이 공간전사체였어요.”
공간전사체란 쉽게 말해 인체 조직의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공간전사체를 알면 우편 배달을 돕는 번지수처럼 암 세포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이 말은 곧 치료약이 정확하게 도달해야 할 곳을 안다는 뜻이다. 그만큼 약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세포 조직에 들어 있는 공간전사체는 DNA에 필요한 단백질을 전달하는 리보핵산(RNA)의 위치정보를 알려줘요.”
이 대표는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들에 가장 필요한 공간전사체 연구가 훌륭한 사업 아이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길로 그는 나 이사, 서울대병원 핵의학 전문의로 일하는 최홍윤 이사, 서울대병원 핵의학 전문의 출신으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임형준 이사와 함께 지난해 7월 현재 회사를 창업했다.
이들은 자체 개발한 혁신적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공간전사체를 연구한다. “가로 세로 각 5㎜ 크기의 조직에 들어있는 RNA마다 색 필터를 입히면 2만5,000장의 위치정보가 들어있는 공간전사체 사진을 얻을 수 있어요. 기존에는 수백 장 사진이 전부였는데 공간전사체를 이용해 2만5,000개의 유전자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게 혁신적이죠.”
공간전사체 분석에 걸리는 기간은 약 4개월이다. 이 대표는 기술 개발을 통해 이 기간을 2개월로 단축할 계획이다. "공간전사체의 분석 내용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이 3개월 정도 걸려요. 이를 1개월로 단축하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그러면 전체 분석 기간이 총 2개월로 줄어들죠."
공간전사체를 분석하면 조직 내 암 세포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 추적할 수 있다. “암 세포는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당이 필요해요. 공간전사체 사진을 통해 당을 어디서 많이 쓰는지 보면 정상 세포와 분리해 정확한 암세포 위치를 추적할 수 있어요.”
이후 중요한 것이 치료 약물의 전달이다. 기존 치료 약물은 암 세포만 정확하게 찾아 전달할 수 없어서 주변 정상 세포까지 파괴하는 부작용이 일어났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이 대표의 두 번째 목표다. “암 치료제 등 각종 약물을 필요한 곳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죠.”
약물을 전달하는 배달부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두 번째 과제다. 그래서 이 대표는 포트래이를 ‘신약 개발의 배달의민족 같은 스타트업’이라고 소개했다. “요즘 각광받는 면역항암제를 잘 전달하기 위한 물질 연구를 전 세계적으로 많이 하죠. 약물을 잘 전달하는 물질 개발에 집중하고 향후 응용 분야까지 연구해야죠.”
약물전달 물질은 제약사나 바이오기업과 손잡고 개발할 계획이다. “물질을 개발하면 목표에 정확하게 전달됐는지 동물 실험을 통해 확인해야죠. 이렇게 되면 신약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 효과 검증도 가능해요. 약물의 실패 원인을 파악해 잘못 작용하는 부작용을 걸러낼 수 있어요. 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타깃분포도로 시각화하면 신약 개발사들에도 큰 도움이 되죠.”
신약의 부작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하지 못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장약으로 개발한 비아그라가 발기부전 치료제로 쓰이는 것처럼 신약을 개량하면 용도를 재정의할 수 있어요. 원래 목적과 다른 효능의 약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할 수 있게 돕는 것이죠.”
이를 위해 이 대표는 국내외 제약사들과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국내 대형 제약사들과 간암, 폐암, 위암 등의 고형 암을 위주로 연구 협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후 치매, 알츠하이머, 파킨슨씨병 등 뇌 질환이나 신경 퇴행성 질환으로 넘어갈 계획이다. “뇌 질환은 아직 좋은 치료약이 없어요. 특히 치매 정복에 관심이 많아요.”
이들이 개발한 물질이 치료에 쓰이려면 임상시험 등을 거쳐야 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후년에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임상시험을 할 계획입니다. 우선 고형 암 관련 신약이 후년이면 임상시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주요 경쟁상대는 노바티스, 클로비스온콜로지 등 거대한 다국적 제약사들이다. “그들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경쟁에서 뒤처진 것은 아니에요. 신약 개발은 빨리 시작했다고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를 위해 이 대표는 4가지 서비스를 개발했다. 조건에 맞는 목표를 찾는 ‘포트래이 타깃’, 타깃분포를 확인하는 ‘포트래이 드럭’, 타깃 적용 효과를 확인하는 ‘포트래이 MOA’, 효과적인 약물 적용 기준을 찾는 ‘포트래이 TME’ 등이다. 4가지 서비스는 하나의 사슬처럼 연결돼 있다. "서비스는 4가지이지만 모두 연결돼 있어요. 이 서비스들은 IT와 의학이 접목된 것이죠. 창업자들이 모두 환자 진료를 경험한 의사여서 이를 IT에 잘 녹일 수 있었죠."
특히 포트래이 TME는 AI를 이용해 빠르게 약물 적용 기준을 찾는다. “포트래이 TME는 2만5,000장의 공간전사체 분석 정보를 AI가 학습해서 조직 사진 1장만 분석해도 약물 적용 기준을 추출할 수 있어요. 따라서 수많은 분석 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어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요.”
전체 직원은 14명. 대부분 의사와 생명과학 연구자, AI 개발자들이다. 연구원이 많아서 스타트업으로는 특이하게 사내에 실험실이 있다. “실험실에서 작은 단서가 나오면 바로 상업화 준비를 해요. 이게 학교 연구실 조직과 다르죠. 최대한 빨리 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고객의 소리를 들으면서 개발을 해요.”
가족들은 의사를 그만둔 것을 아쉬워하지만 정작 이 대표는 후회하지 않는다. “현재 삶이 더 즐거워요. 의대 교육이 뿌리가 돼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목표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신약을 만드는 것이죠. 아울러 직원들이 서로 성장시켜 줄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꿈이죠. 그래픽카드와 AI 반도체를 개발해 IT업계에 기여한 엔비디아처럼 끊임없이 좋은 약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는 신약 개발의 엔비디아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