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여파로 관할 경찰관들의 피로도가 한계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초구 대통령 자택과 용산구 대통령실 집무실 주변에 배치된 경찰관들은 매달 60시간 안팎의 초과근무에 투입되고 있다. 경찰청은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업무량 증가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설명하지만,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경찰 지휘부의 과잉ㆍ심기 경호로 현장만 죽어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5일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용산경찰서에서 집회ㆍ시위 현장을 관리하는 경비과 직원들은 6~8월 석 달간 총 6,123시간 초과근무를 했다. 직원 한 명당 월평균 초과근무 시간은 86시간으로 집계됐다. 한 달 근무일수를 22일로 가정할 때 매일 법정 근로시간(8시간)에 더해 4시간가량 더 일한 셈이다.
다른 부서들도 격무에 시달리긴 마찬가지였다. 같은 기간 교통과 직원들은 월평균 66시간의 초과근무를 했고, 대공ㆍ방첩 업무를 맡는 안보과(63시간)와 집회ㆍ시위 관련 정보활동을 하는 공공안녕정보외사과(58시간)의 업무량도 폭증했다. 용산서 전체 직원으로 범위를 넓혀도 한 달 초과근무 시간(46시간)이 지난해 같은 기간(44시간)보다 2시간 늘었다. 경찰 내부 규정에는 현장 경찰관이 월 최대 134시간(내근직은 57시간)까지 초과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윤 대통령 사저(아크로비스타)를 경비하는 서초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6~8월 서초서 경비과 직원들은 총 3,924시간, 1인당 월평균 103시간 초과근무를 했다. 서울 일선서 경찰관은 “한 달 초과근무가 100시간을 넘어가면 휴일 없이 그냥 경찰서에서 살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정보안보외사과(65시간), 교통과(59시간) 등도 60시간 안팎의 초과근무를 찍었다. 서초서 전체 직원의 한 달 평균 초과근무 시간(52시간) 역시 1년 전(46시간)과 비교해 6시간이나 증가했다.
과중해진 업무는 대통령실 이전 외에 달리 설명할 요인이 없다. 실제 용산서는 대통령실이 옮겨 오면서 주변 집회ㆍ시위가 크게 늘었다. 6~8월 용산서에 신고된 집회ㆍ시위 건수는 853건으로 1년 전(559건)에 비해 52.6% 급증했다. ‘사전 정보 수집→현장 관리(경비ㆍ교통)→사후 수사’로 이어지는 집회ㆍ시위 업무 특성상 경찰서 자체 업무량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용산서 한 정보경찰관은 “원래 미군기지가 이전하면서 관내 집회가 계속 줄고 있었는데, 대통령실이 들어서자 다시 증가세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서초서는 윤 대통령 자택 주변 경비에다 대통령의 출ㆍ퇴근 관리를 위해 두 경찰서 소속 교통 외근경찰 30~40명이 추가 배치되면서 교통과 업무까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지휘부와 현장의 괴리감은 크다. 일선 경찰관들은 과로를 호소하고 있다. 용산서의 한 형사는 “지구대ㆍ파출소는 물론 형사과 직원들까지 돌아가면서 집회ㆍ시위 현장에 차출되고 있다”며 “비(非)경비 부서의 본래 업무 역량마저 훼손되는 연쇄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가령 탈북민 관리 등을 전담하는 안보과 직원들마저 집회ㆍ시위 현장에 우선 투입되는 식이다. “진짜 지옥 그 자체”라며 격하게 반응한 경찰관도 있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 경비를 하던 종로서에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경찰관들이 용산으로 그대로 넘어갔다”며 “통계적으로 근무 시간이 급증한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5월 대통령실 이전 후 종로서의 경비ㆍ교통ㆍ정보 관련 인력을 흡수하면서 현원이 732명(2월)에서 808명(8월)으로 76명 증가한 만큼 혹사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현장에선 추가 인력을 간절히 원하지만, 정부가 결정한 내년도 전체 경찰 증원 규모는 고작 10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요청한 증원 인력(5,147명)의 0.2%밖에 되지 않는다. 임 의원은 “면밀한 계획 없이 이뤄진 대통령실 이전으로 현장 경찰관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며 “민생 치안을 담당해야 할 경찰이 집회ㆍ시위에만 힘을 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