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아파트 30% 올랐다"...'엔저'에 일본 부동산 싹쓸이하는 외국인

입력
2022.09.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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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에 일본 부동산 쇼핑 나서는 외국인 급증
교토·도쿄 주요 도시 부동산 가격 급등
집값 못 견딘 젊은 층은 교외로 유출

“교토역 앞이나 시조(四条) 거리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사고 싶다. 예산은 4억 엔(약 38억8,000만 원) 정도다.”

일본 교토시에서 부동산회사를 경영하는 류청 사장은 최근 중국, 홍콩 등지에서 이런 문의를 하루 4, 5건씩 받는다. 올해 들어 실제 거래를 중개한 ‘한 동 매입’ 사례도 이미 6건에 이른다. 매입 가격은 2억~5억 엔대. 류 사장은 “코로나19로 줄었던 일본 부동산 매입 수요가 80%는 돌아왔다는 얘기가 실감 난다”고 말한다.

교토 시내 아파트 가격, 3년 전보다 28% 올라

'엔저'를 등에 업고 일본 부동산 쇼핑에 나선 외국인 투자자들이 늘면서 일본 주요 도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특히 공급이 적고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교토 아파트 가격은 다른 도시 대비 상승률이 더 가파르다.

19일 아사히신문은 부동산경제연구소 조사를 인용해 2021년도 교토 시내 신축아파트 가격이 ㎡당 86만5,000엔(약 840만 원)으로, 3년 전보다 28% 올랐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도쿄 23구는 130만8,000엔(약 1,271만 원)으로 12%, 오사카시는 93만6,000엔(약 909만 원)으로 20% 상승했다.

최근 일본 부동산 가격의 급등세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지자, 싼값에 일본 부동산을 매입하려는 외국인, 그중에서도 중국·홍콩 투자자들이 늘면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5엔에 육박하는 등 2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부동산 가격은 그대로일지라도, 달러를 보유한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환율이 올라간 만큼 땅값이 싸지는 효과를 볼 수 있어, 투자 매력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일본 부동산 쇼핑에 나선 홍콩의 한 자산가는 "엔저 현상으로 일본 부동산 가격이 지난해 대비 최대 30% 할인된 셈이라, 앞으로 더 많은 자본을 일본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집값 올라 못 살겠다" 젊은 층 떠나... 교토시, 비거주 주택에 세금

당연히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교토 등지의 아파트는 다른 도시 대비 가격이 더 가파르게 오를 수밖에 없다. 류 사장에 따르면 중국인에게 교토의 인기는 예전부터 높았다. 관광하러 와서 교토의 역사와 문화를 접한 뒤 일시 체류용이나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이 많다.

특히 교토는 2007년 높이 31m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하는 규제로 아파트 공급이 다른 지역 대비 더 부족한 상태였다. 지난해 신축 아파트 공급 현황을 보면 도쿄 23구는 1만3,000호, 오사카시 6,300호가 공급됐지만 교토 시내는 1,504호에 불과했다.

외지인들이 본인이 거주하지도 않는 아파트를 사며 집값을 올리자 교토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높은 집값을 견디지 못하고 교토를 떠나는 사람이 늘자 거주자가 없는 아파트에 ‘비거주 주택 이용·활용 촉진세’라는 새로운 세금을 전국 최초로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주민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조사해 과세한다.

가도카와 다이사쿠 시장은 “(인구 감소를) 엄격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젊은 세대가 교토에 계속 살면서 일하고 육아도 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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