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과학자들에게 사과한다. 10여 년 전 ‘지구 온도가 1도만 올라가도 재앙’이라고 했을 때 피식 웃고 말았다. 하루 일교차도 10도인데, 1도 가지고 호들갑이람. 그 사이 살인적 폭염, 대형 산불, 기록적 폭우, 코로나19 바이러스 등 기후 위기 재앙이 지구를 덮쳤다. 이제는 누구도 기후 위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세계적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말처럼 당면한 문제도 '후손에게 지구를 잘 물려주느냐'가 아니다. 우리는 '몇십 년 후 내가 생존해 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니 기상 예측 전문가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이 ‘기후 위기, 지구의 마지막 경고’라는 불길한 제목의 책을 쓴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한국 곳곳에 지구가 보낸 경고장이 날아들어서다. 지난달 8일 서울 강남역 일대를 물바다로 만든 폭우도 기후 위기가 범인이다. 지구 가열로 예상치 못한 장마전선이 형성돼 물폭탄을 터트렸다. ‘아까시나무 꽃피면 산불이 나지 않는다’는 옛어른들의 지혜도 체면을 잃었다. 우리나라 산불은 건조한 날씨의 3, 4월에 집중됐는데, 지금은 1월과 5, 6월에도 산과 들이 불탄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공기가 뜨거워져 산림을 장작으로 만들었다.
무섭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공포영화 같은 책이다. 지구가 뜨거워진 탓에 동식물과 해양 생물 다수는 멸종 직전이다. 폭염과 홍수로 2020년 세계 기근 인구는 8억 명을 돌파했다. 사막화, 해수면 상승, 가뭄으로 30년 이내 12억 명이 기후난민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반 센터장은 본보 통화에서 “서늘한 날씨의 영국 런던 기온이 40도까지 오르고, 스페인 마드리드 주변은 45도 폭염에 시달리는 등 지구가 미쳐가고 있다”며 “조만간 우리나라도 45도 이상의 폭염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화이트 스카이’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담았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는 책으로 2015년 퓰리처상을 거머쥔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신작이다. 메시지는 예상외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는 인위적인 섣부른 시도가 또 다른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딜레마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현재 미국 지구공학 연구자들은 20톤 정도의 ‘빛 반사 입자’를 지구 성층권에 살포하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성공하면 지구가 더 뜨거워지지는 않는다. 푸른색이던 하늘 색이 흰색이 된다는 게 함정이다. 호주 과학자들은 산호 유전자 개량 실험을 하고 있다. 기후변화에도 견딜 ‘강한 산호’를 키우겠다는 포부다. 인공적 조작이 생태계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마침내 괴상해진 걸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지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오만. 다른 하나는 이정모 국립과학관 관장의 추천사에 잘 나와 있다. “뭐라도 해야 한다. 하다못해 벽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하늘이 하얗게 될지언정 살아남아야 한다.” 어느 쪽 해석에 마음이 가든,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토록 엄중한가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펴낸 ‘아주 구체적 위협’은 쉽게 읽히는 단편소설집 같은 책이다. 김추령 신도고 교사,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 7명이 식량, 노동, 건강, 주거 등 구체적 일상의 측면에서 함께 고민할 거리를 풀어놨다. 한반도가 뜨거워지면서 경북 경산, 영천, 충남 예산에서 재배되던 사과 재배 적합지가 휴전선까지 북상했다. 이 같은 기후 위기는 곧 식량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니 식량 자급률 확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석탄 발전소 폐쇄와 전기차 전환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들의 삶도 시야에 넣어야 한다.
여러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인데, 다들 아는 그 이야기가 맞다. 우리 모두 그저 조금씩 불편하게 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 비장한 각오도 중요하겠지만, 일상생활 속 작은 변화부터 실천하자는 현실적 제안에 더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다. 유권자로서, 소비자로서 힘을 사용하라는 대목도 소개하고 싶다. “선거에서 기후 위기에 슬기롭게 대응할 것으로 생각되는 정치인을 뽑고, 친환경적 기업에 투자하는 일부터 한걸음씩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