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화 전문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스코틀랜드에서 별세한 것과 운구행렬, 장례식 등이 오래전부터 기획된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여왕 사후에 연연방국가들의 독립 요구를 예감해 왕의 위세를 보여주려는 의도란 해석이다. 버킹엄궁에 거주하지 않으려는 찰스 3세에 대해서는 청와대를 개방한 "한국을 벤치마킹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영국 워릭대에서 철학석사, 세필드대에서 문화이론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지난 14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인터뷰에서 "여왕이 스코틀랜드에서 돌아가신 것을 포함해 장례식 자체가 기획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장례식을 '기획작품'이라고 말한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지금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고 난리인데 거기에서 돌아가셨다"며 "(여왕이 서거한) 애버딘이라는 곳은 한반도로 보면 아오지 정도 되는 지역"이라고 짚었다. 즉 "왕실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유나이티드 킹덤이며 킹덤을 유나이티드(연합) 해 주는 존재가 왕이라는 위세를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여왕이 죽음을 맞을 장소로 스코틀랜드를 택한 건 연연방 국가들의 독립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한편 웨일스, 북아일랜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가 한 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사람은) 돌아가실 때쯤 되면 다 안다. 제일 중요한 건 왕가는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니라 돌아가실 때를 다 계산하고, 심지어 내가 이때쯤 죽겠다라고 예언을 하고 죽는 것으로 돼 있다"며 "왕실의 전통은 그만큼 치밀하다"고 강조했다.
여왕이 사망 이틀 전에도 새 총리를 만나 임명장을 준 것에 대해 이 교수는 "그것이 핵심"이라며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사망 가능성을 전혀 안 보여줘야 된다. 그것을 엘리자베스 2세가 너무 잘했다"고 감탄했다.
이 교수는 "(지난 6일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가 예방했을 때) 여왕은 분명 사경을 헤맸을 것이다. 사진을 보면 (여왕) 손등에 멍이 들어 있다. 이는 어마어마한 약을 투약하고 있었다는 얘기다"라며 "그런데도 아주 꿋꿋하게 행동을 했다는 건 이분이 보통은 아니라는 증거다. 정말 대단한 여왕이었다"고 거듭 놀라워했다.
이 교수는 여왕 사후의 일을 다루고 있는 "유니콘 작전도 1960년대부터 이미 다 수립이 돼 있었다"며 "이러한 계획들은 즉위하고 한 10년 정도 되면 다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즉위식 등 잇단 공식행사에서 자주 찌푸린 표정을 지어 '짜증왕'으로 등극한 찰스 3세에 대해서는 "엘리자베스 2세 못지않게 훌륭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찰스 3세가 버킹엄궁 거주를 주저하는 것을 두고 이 교수는 "자기는 집에서 출퇴근하겠다. 궁을 개방하겠다고 (검토)한다"며 "찰스 왕께서 지금 한국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찰스 3세가 "기후변화 관련해 굉장히 많은 이슈들을 제기했고, (비판받는) 왕실의 여우사냥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여 왔다"며 "(찰스 3세가) 일본 천황의 길을 밟아가지 않을까. 왕의 많은 특권을 내려놓고 평민으로 돌아가서 같이 서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찰스 3세가 최근 공개일정에서 자주 짜증을 낸 이유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놨다. 이 교수는 여왕의 장수를 이유로 꼽으며 "왕위 계승을 담당하는 문장원이란 기관이 있는데, (그 직원들이) 한 번도 살아생전 왕위를 계승한 적이 없다. 그래서 (실제 절차를) 아는 사람이 없다. 찰스 왕 자신보다도 (직원들이) 어리다"고 짚었다. "국왕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되고 왕위계승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아마 찰스 왕이 화가 난 이유가 그것일 것"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