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건 떠넘기고 패소하면 판사 비난… "사법 불신 조장"

입력
2022.09.1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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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넘어오는 정치 사건에 법관들 부담 가중
결과 마음에 안 들면 공격… '사법의 정치화' 심화
판사들 "사법부 독립 훼손 땐 대법원 적극 나서야"

정치권이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부에 넘기는 일이 잦아지면서 사법부 신뢰에도 금이 가고 있다. 선고 결과와 이해득실에 따라 법원 판단을 폄하하고 판사들을 겨냥한 인신 공격까지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 내부에선 "정치권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는 지금이 수뇌부가 나서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부가 당면한 '정치의 사법화'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①입법 실패를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가 해결하거나 ②정치권이 '정당 내 사건'으로 법원을 찾거나 ③고소·고발된 정치인을 검찰이 기소하는 경우다.

판사 공격에 '사법의 정치화'까지... "법치주의 불신"

입법 실패 사안을 법원이나 헌재가 해결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따른 자연스러운 절차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입법 미비로 기본권 침해 우려가 높다면 사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불가 판결이나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당이나 정치인이 권력 다툼 과정에서 법원을 찾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정당에서 사법부 문을 두드리는 경우는 대부분 정치적 공방의 산물일 뿐, 기본권 침해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법원은 정당이 내린 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고 말하면서도, 원내 토론과 합의로 정리할 사안을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게 법원 내 지적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나 정치인들끼리 주고받는 고소·고발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권력 다툼이 법원을 향한 압박과 공세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 전 대표 소송의 경우 "선을 넘지 말라"며 기각 판결을 요구하는 엄포가 국민의힘 측에서 나왔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자녀 입시비리 혐의로 징역 4년을 확정받자 "판사 성향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는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비난했다.

최근엔 판사를 향한 인신공격성 발언도 잦아지고 있다. 판사의 출신 지역이나 과거 판례를 뒤져 '입맛대로' 비난하는 식이다. 판사 출신인 주호영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황정수 수석부장판사를 겨냥해 사실과 다르게 "특정 연구모임 출신"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사법부 독립 위협, 대법원 수뇌부 나서야"

정치권의 이 같은 행태는 사법 불신으로까지 이어진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지층만 바라보는 극단화되고 팬덤화된 정치 지형이 사법부를 향한 공격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며 "정치인들이 잘못을 감추고 책임을 전가하는 수단으로 사법부를 비난하면서 사법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에선 판사들을 향한 무분별한 공격이 임계치에 도달한 만큼, 수뇌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역대 대법원장들은 사법부 독립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면서도 막상 판사가 부당하게 공격당하면 침묵으로 일관했다"며 "정치권 눈치를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구성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법원이 정치권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허술한 판결문이나 편향된 재판으로 정치적 논란을 양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현실적으로 정치권의 각성이나 자정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며 "판사들이 중심을 잡고 사법부 권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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