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언론인협회(IPI)가 창립 50주년을 맞은 2000년 5월 ‘세계 언론자유의 영웅들(World Press Freedom Heroes)’ 50명을 선정했다(최종 60명). 언론인의 추천과 심사로 뽑힌 그 명단에, 워싱턴포스트의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 독일 슈피겔 전 발행인 루돌프 아우그슈타인 등과 함께 한국인 최석채(1917~1991)가 포함됐다. 1955년 9월 대구매일신문에 쓴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이 주요 공적 중 하나로 언급됐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 시절이었다. ‘OO 궐기대회’ 등 툭하면 열리던 관변 정권 부역행사에 중고교생들이 동원되던 때였다. 가톨릭재단이 운영하던 대구매일신문은 정부 비판 등 정치적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었다.
해방 전 임시정부 구미위원회에서 이승만의 측근으로 활동하다 자유당 정권의 유엔대사 등을 지낸 인물(임병직)이 1955년 9월 대구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의 환영 행사에 또 학생들이 동원됐다. 최석채는 이렇게 썼다. “그 현관(顯官, 벼슬아치)이 대구 시민과 무슨 큰 인연이 있고, 또 거시적으로 환영하여야 할 대단한 국가적 공적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수천, 수만 남녀 학도들이 면학을 집어치워 버리고 한 사람 앞에 10환씩 돈을 내어 ‘수기(手旗, 작은 깃발)’를 사 가지고 길바닥에 늘어서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 못 한다. (…) 고급 행정관리들의 상부 교제를 위한 도구로 학생들을 이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다음 날인 14일 ‘애국연합’ 등 관변단체 조직원들이 신문사에 난입, 인쇄시설을 부수고 사원들을 폭행했다. 경찰은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며 방관했고, 오히려 최석채를 1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해 기소했다. 그는 이듬해 5월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는 경향신문 편집국장,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주필, 문화방송 회장(1974~1980)을 지냈으며, 1977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