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코앞인데 차례상이고 뭐고 집도 못 치우고 있어요.”
8일 오전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1,100여 가구 전체가 침수된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내리에서 만난 주민 정모(45)씨는 흙탕물로 범벅이 된 가재도구를 치우며 줄곧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는 “하나라도 건져볼까 싶어 씻고 닦고 말리고 있지만 제대로 작동할까 모르겠다”며 “차례상은커녕 추석이 어머니 생신인데 미역국 한 그릇이라도 끓여 드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민 최순해(71)씨도 “아직 전기가 안 들어와 집도 다 못 치웠는데 차례상 준비할 정신이 있겠냐”며 “애들한테도 올 추석에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뉴스 보고 걱정돼 어제 내려왔더라”고 말했다.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지난 6일 새벽 시간당 최대 100.5㎜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포항은 태풍이 지나가고 이틀이 지났지만, 도심이나 농촌 할 것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일부 지역에는 여전히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수돗물도 끊겨 아파트 주민 수백 가구가 친척집과 모텔, 찜질방 등을 전전했다. 축구장 1,245개와 맞먹는 포항제철소까지 전부 물에 잠기는 등 피해 규모가 워낙 커서 복구는 더디기만 하다.
8일 경북도에 따르면, 전날 1만9,000여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겨 대부분 복구했으나, 281가구가 여전히 단전돼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과 장기면, 동해면, 호미곶면 지역 2,000여 가구에선 수돗물 공급이 안 되고 있다.
하천이 범람해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기면서 8명이 숨진 포항 남구 W아파트와 S아파트도 전기와 수도, 가스가 모두 끊긴 상태다. 사망자 6명이 몰려 있던 W아파트 1차 단지는 신속한 구조 작업을 위해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돼 배수작업을 마무리했지만, W아파트 2차 단지와 S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장비 부족으로 작업이 더딘 상태다. 특히 S아파트는 사흘째 전기와 수도 공급이 안 돼 주민들이 생수통을 들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S아파트 주민 이모(50)씨는 “멀리 구미소방서에서 살수차를 보내줘 물을 받아 쓰고 있다”며 “아이들까지 페트병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집집마다 가족이 총출동해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울먹였다.
침수로 조업이 중단된 포항제철소와 현대제철 포항공장에선 추석 연휴 기간 임직원은 물론 타 지역 공장과 협력업체 직원까지 동원해 복구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포항제철소는 경북소방본부에서 대형 양수기 8대, 현대중공업 등 조선소 3곳에서 양수기와 비상발전기 등 총 78대를 지원받아 공장 지하실마다 가득 찬 진흙과 흙탕물을 퍼내고 있다.
포항제철소 관계자는 “이달 10일쯤에는 휴풍 중인 고로 3기를 순차적으로 가동시킬 방침”이라며 “압연 변전소도 추석 당일 정상화해 전력 복구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항시민들을 돕기 위한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포항 남구 오천읍의 한 헬스장에선 단수로 씻지 못한 이웃 주민들에게 무료로 샤워실을 내줬다. 인근의 미용실도 인터넷 맘카페를 통해 정수기와 세탁기를 쓰도록 했다. 미용실 원장 김태연(39)씨는 “우리 집도 단수돼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물이 나오자마자 ‘마음껏 사용하시라’는 글을 올렸다”며 “서로 응원하면 오히려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포항을 거점으로 2차전지 양극재 소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는 포항시에 수해복구를 위한 성금 100억 원을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