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레인지로버'가 5세대 모델로 돌아왔다. 1970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레인지로버는 50년 넘게 진화를 거듭하며 대표적 고급 SUV가 됐다. 가장 큰 특징은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험한 길에서도 우아한 승차감을 준다는 점이다. 단순히 내·외관 디자인만 멋드러진 것이 아니라, 주행 성능까지 '고급스러움'을 갖춘 차량이다.
9년 만에 완전변경(풀체인지)을 마친 레인지로버를 처음 봤을 때 기존 4세대 모델에서 한 차원 진화했구나 하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사실 그동안 레인지로버가 독식하다시피 했던 영역인 고급 SUV 시장에 '3대 명차'인 벤틀리(벤테이가), 마이바흐(GLS)에 이어 진짜 롤스로이스(컬리넌)까지 진출하면서 '원조'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런 상황서 레인지로버는 파워트레인(동력계통), 플랫폼, 전자장비 등 모든 면을 개선하고, 2024년에는 순수 전기 모델까지 선보이며 차별화를 꾀한다.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레인지로버는 고급 등급인 '오토바이오그래피' 5개 모델이다. 최근 강원 홍천군 '세이지우드 홍천'에서 인제 박달고치를 다녀오는 시승에서 만난 차량은 레인지로버 롱휠베이스(LWB) 7인승 P530 오토바이오그래피다. 레인지로버가 처음 선보이는 7인승 모델이자, 강력한 주행 성능을 발휘하는 차량이다. 이번 시승은 구불구불한 산길,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험로(오프로드), 계곡 등 다양한 주행 환경에서 진행, 레인지로버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시승 모델은 최고출력 530마력의 4.4리터 V8 가솔린 엔진을 넣었다. 최대토크도 76.5㎏.m에 달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6초 만에 도달한다. 수치만 봤을 땐 슈퍼카 못지않게 역동적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론 여유로우면서 묵직한 느낌이었다. 비가 오는 산길을 오르내릴 때도, 고속도로를 빠르게 치고 달릴 때도 차 안은 한결같았다. 특히 시속 100㎞ 정속 주행할 땐 마치 요트를 탄 것처럼 편안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레인지로버는 오프로드에서 최고였다. 지상고를 평소보다 135㎜ 높인 '오프로드2'로, 지형시스템을 '오토'로 설정하고, 박달고치 오프로드 코스에 들어섰다. 비 내리는 산길에선 긴장의 끈을 놓기 힘들다. 하지만 레인지로버는 안정적으로 흙길을 헤치며 '스윽~' 올라갔다. 길이 좁아도 중앙 터치스크린에 보이는 '오프로드 카메라' 화면 덕분에 어렵지 않게 운전할 수 있었다.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바퀴가 지면에 하나만 닿아 있는 길도 어렵지 않게 빠져나갔다. 전자식 차동제한장치(LSD)인 '액티브 락킹 리어 디퍼렌셜 시스템'이 탑재된 덕분이다. 오프로드 시승의 백미는 깊이 900㎜의 강을 건너는 '도강' 코스였다. 바퀴, 휀더, 범퍼가 모두 물에 잠기고, 창문을 내리면 강물을 만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천천히 전진할 수 있었다. 최근 폭우로 허리까지 물이 찼던 도로에서도 레인지로버는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인지로버의 주행 성능은 '터프'하지만, 생김새는 '우아'하다. 차체 이음새와 경계를 최소화해, 하나의 덩어리로 빚은 도자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큰 덩치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실내는 '가죽으로 만든 방'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 손길이 닿는 모든 곳이 고급 가죽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시트에 앉았을 때 받는 느낌은 웬만한 고급 소파보다 편안했다. 이는 장거리 주행할 때도 엉덩이와 허리가 느끼는 피로감을 줄여주는 장점이기도 하다.
디자인 곳곳에는 최첨단 기술도 숨어 있다. 발광다이오드(LED) 헤드라이트는 최대 500미터(m)까지 비출 수 있다. 13.1인치 커브드 플로팅 터치스크린은 조형적으로 멋지면서,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기능도 제공한다. 이번 레인지로버는 LG전자와 협업한 '피비프로' 시스템을 탑재, 기존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전자장비 잔 고장은 예전보다 걱정을 덜 해도 될 것 같다.
이처럼 '팔방미인' SUV를 구입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이번 시승 모델인 '레인지로버 LWB 7인승 P530 오토바이오그래피' 가격은 2억2,537만 원이다. 웬만한 수도권 빌라나 오피스텔 전세 보증금과 맞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