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미움을 덮죠.’
7년 만에 음악활동을 재개한 가수 임재범의 신곡 '아버지 사진’의 마지막 소절이다. 2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당시의 심경이기도 하다. 그는 이 곡에서 ‘다른 게 보여요 / 당신의 나이가 되니 / 감당 못하셨을 그 무게와 외로움들이 / 할퀴던 순간도 속은 아프셨을 그 맘 사랑이었을까요‘라고 노래한다.
지난 6월 신곡 ‘위로’를 시작으로 7곡을 발표한 임재범이 ‘아버지 사진’을 비롯해 네 곡을 추가로 발표하며 10년 만의 정규 앨범인 7집 ‘세븐 콤마(Seven,)’를 완성했다. 앨범 발매를 하루 앞두고 7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새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연 그는 다소 핼쑥한 모습으로 ‘아버지 사진’을 불렀다. 임재범의 부친은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외삼촌이자 가수 겸 배우 손지창의 아버지이기도 한 1세대 아나운서 고 임택근씨다.
“제가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어요. 여러 미운 감정이 있었지만 가사처럼 이별은 미움을 덮더군요. 아버지가 떠나시고 염하는 모습을 볼 때 맘이 무너지더라고요. 제가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기도 해서 좋은 것보다 나쁜 게 부각돼 보도가 됐는데, 미운 정도 있고 좋은 기억도 있었어요. 아버지에게 죄송했죠. 그런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내려오면서 ‘이젠 진짜 세상에 내 아버지가 없구나’ 하는 생각에 외로움과 죄송함 등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7집 ‘세븐 콤마’는 2012년 정규 6집 ‘투…(To…)’ 이후 10년 만에 내놓는 앨범이다. 7집이라는 뜻과 7년의 공백을 뜻하는 제목으로 소속사 블루씨드컴퍼니는 “이제 쉼을 멈추고 비로소 숨을 쉬며 전진하겠다는 의미로 ‘숨표’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가수 겸 작곡가 김현철 윤상을 비롯해 유명 작곡가 최준영 신재홍 이상열 등이 총출동했다. ‘너를 위해’ ‘사랑보다 깊은 상처’ ‘비상’ 등 임재범의 히트곡을 도맡아 썼던 작사가 채정은이 ‘너란 사람’(심현보 김현철 작사)을 제외한 모든 곡의 가사를 지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 지난 2017년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는 마음, 7년간의 방황, 딸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
지난 10여 년간 임재범은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뮤지컬 배우였던 아내 송남영씨의 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2011년 오랜 공백을 깨고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송씨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2016년 초 공연을 끝으로 다시 긴 칩거에 들어갔다. 2017년 아내와 사별하고 3년 뒤 다시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7년간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상처들이란 게 쉽게 지워지지 않더군요. 자꾸 되뇌고 되뇌게 되더라고요. 상처들이 있다 보니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음악도 듣기 싫어졌어요. TV에는 웃고 즐거운 내용만 나오니 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죠. 저 스스로 가두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새 앨범 제작을 막 시작했을 당시 임재범의 건강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호 블루씨드컴퍼니 대표는 "지난해 초 임재범을 만났을 때 몸무게가 지금보다 15~20㎏ 정도 빠졌을 만큼 신체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걱정이 많이 됐다"고 회고했다.
목소리를 되찾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 기다려준 소속사와 팬들 덕분에 복귀할 수 있었다는 임재범은 “첫 녹음할 때 이전에 어떻게 발성했는지조차 몸이 잊어버렸을 정도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소리를 찾아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앨범 발매에 맞춰 방송 활동도 시작한 그는 내달 29일,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국 투어에 돌입한다.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며 노래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임재범. 그는 “(가수가 아닌) 다른 길로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은 이렇게 다시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고 있다”며 “자기가 원하는 것과 가야 할 길이 다르듯 음악은 내게 숙명인 것 같다”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