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안 하면 10년 뒤에도 못 한다

입력
2022.09.0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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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대학 본부캠퍼스에서 매주 글쓰기 강연을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고 싶어 뒤늦게 시민기자로 등록한 분들이 대상이라 '독자를 팬으로 만드는 매력적인 글쓰기'라는 책임지지 못할 제목을 붙였는데도 금세 마감이 되어 다행이었다. 초등학교 때 소년한국일보의 '비둘기 기자'로 활약한 것 말고는 언론계에 종사해 본 적이 없는 내가 기사 쓰는 방법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나는 첫 시간부터 '훌륭한 기자는 기사 말고 다른 글도 잘 써야 한다'라는 비겁한 변명으로 수강생들을 현혹시켰다. '나는 기자라서 다른 글은 잘 못 쓴다'라는 생각이야말로 상상력을 억압하는 프레임이라는 속 보이는 주장이었다. 이런 엉터리 같은 강연에도 불구하고 과제로 낸 기사를 보면 잘 쓴 분들이 꽤 많았다. '문해력 논란'을 소재로 의견 기사를 멋지게 낸 분, 자신이 수강하는 서울시민대학의 다양한 학제와 수강 과목을 취재해 서울시 게시판에 게재를 한 분도 있었다.

그 수강생의 기사를 읽고 찾아보니 글쓰기는 물론 인문학, 시사, 독서, 음악, 춤 등 어렵지 않게 참가할 수 있는 강좌가 정말 많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질서', '전쟁으로 보는 스페인 역사 다섯 장면 : 한니발에서 30년 전쟁까지' 같은 정치·전쟁사는 물론 '서울 궁궐 탐구생활 : 서울 궁궐 산책하기', '광화문에서 용산까지 : 국가 중심가로의 변화로 본 서울의 근현대사와 내일' 등도 흥미로웠다. 더구나 대부분 무료거나 1만 원 정도면 등록할 수 있다(내가 하는 강연의 수강료도 다섯 강에 1만 원이다). 시간과 성의만 있다면 어디서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청주 오창도서관의 '손바닥 자서전 쓰기'도 마찬가지다. 이 강연은 '2022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공모전에 냈던 기획서 덕분에 하게 되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글쓰기는 평생 처음인 분들이라 솔직히 별 기대는 없었다. 심지어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친구 따라왔다가 무료라길래 나도 등록했다'라고 고백한 분도 있었다. 그러나 강연이 시작되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찾아보는 표정들이 진지했고 그걸 글로 써서 작은 책으로 만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대면 강의는 물론 온라인에서도 워크숍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20명의 수강생 중 16명이 손바닥 자서전 글을 써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제 한 달 후면 이분들은 자신의 글이 실린 책을 들고 만날 것이다.

당신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을 잊고 사는 이유는 '두 가지'가 없어서다. 하나는 시간, 또 하나는 정신이다. 도대체 먹고사느라 시간이 없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정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 강연이나 손바닥 자서전 워크숍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이라고 시간이나 정신이 마냥 샘솟을까. 아니다. 어떡하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 방법을 찾아본 것이다. 지금이라도 어렸을 때 꿈이 뭐였는지 기억해 보시기 바란다. 아니, 어렸을 때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뭔가? 시간 없고 정신없다고 지금 안 하면 금방 10년 전, 20년 전의 꿈이 된다. 이젠 의학이 발달해서 옛날보다 오래 산다. 꿈을 꾸고 그걸 실행할 시간은 생각보다 많다.


편성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