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방에는 악몽과 같았던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가고 맞은 추석 연휴. 눈부시게 맑은 하늘이 전국에 펼쳐졌다. 올 추석 연휴는 초반에 일교차가 큰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 추석 당일에는 옅은 구름 사이로 보름달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추석과 태풍의 연은 길고 질기다. 매해 추석 차례상 물가를 결정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태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추석 연휴가 여름 내내 우리나라를 점유하던 북태평양고기압이 찬바람에 밀려 물러나면서 태풍이 올라올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아직도 바람과 관련된 역대 기록을 모조리 갖고 있는 2003년 태풍 '매미'는 추석 하루 뒤 제주도를 통과해 경남 고성군에 상륙했다. 이어 6시간 동안 경남 지역을 가로지르며 엄청난 피해를 낳았다. 추석을 맞아 모인 일가족 등이 해일 때문에 한꺼번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역대 인명 피해 1위 태풍인 1959년의 '사라'도 추석 태풍이었다. 사라는 9월 17일 한반도에 상륙했는데, 하필 추석 당일이라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있다 피해를 당한 사례가 많았다. 초가집이 대부분이었고 어떠한 방재 인프라도 갖추지 못한 시절이라 미리 태풍 북상 사실을 알지도, 대피하지도 못했다. 사망자만 849명 발생한 사라는 여전히 역대 최악의 태풍으로 꼽힌다.
2000년에는 태풍 '사오마이'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영향을 주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15시간이 걸리는 최악의 귀경전쟁을 겪어야 했다. 2016년 태풍 '말라카스'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남해안과 제주도에 큰 비를 뿌렸다. 지난해에도 '찬투'가 추석 직전 제주도를 스쳐 지나며 산간 지역에 1,000㎜에 가까운 폭우를 쏟아냈다.
올해는 다행히 추석 당일 보름달을 볼 수 있겠지만 연휴 막바지에는 전국에 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연휴 직후에는 또 한 번 태풍 북상 가능성도 있다. 8일 오전 9시 일본 오키나와 남서쪽 해상에 있던 제24호 열대저압부가 제12호 태풍 '무이파(MUIFA)'로 발달했는데, 기압 배치상 여전히 우리나라로 향하는 '태풍의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추석 전후 태풍을 더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가을 태풍 빈도가 늘고 있어서다. 2020년 한국대기환경학회에 실린 정우식 인제대 대기환경정보공학과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가을에 온 태풍은 33.3% 증가했고, 10월 태풍도 13.9%나 늘었다. 특히 9월과 10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추석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태풍 위험성은 높아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