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문은 비정규직이 달고, 오른쪽 문은 정규직이 단다.' 이 말은 울산에서 새삼스러울 게 없는 공지의 사실이다. 2003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이하 '지회')를 만든 최병승은 불법파견 철폐를 주장하다 해고됐다. 긴 재판 끝에 2010년 7월 대법원이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지회가 이 판결을 근거로 정규직화를 요구했으나 현대차가 거부했다. 그해 11월 지회는 울산1공장 '자동차 문짝 탈부착 생산라인'을 점거했다. 생산라인이 336시간 멈췄다. 가담자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벌금과 징역형이 선고됐고 손해배상소송도 잇따라 제기됐다.
정당한 쟁의라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위력으로 공장을 점거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배척했다. 현대차가 입은 손해는 336시간 동안의 고정비(조업과 무관하게 지출되는 비용) 371억 원과 자재손실액 등 3억 원인데, 현대차의 잘못도 고려해 피고들의 책임을 50%로 제한하되, 현대차가 90억 원만을 청구했기 때문에 지회와 피고 16명은 전액을 공동지급하라는 판결을 했다.
법원이 가압류를 인용하거나 재판에서 불법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노동자에게는 지옥문이 열린다. 회사는 가압류 결정으로 암바를 걸고, 판결이라는 초크로 목을 조른다. 노조 탈퇴라는 항복의 탭을 치지 않으면 계속 피소되고 집과 통장이 압류된다. 20만 원을 더 받자고 한 일인데 20억 원을 물어줘야 한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기도 한다.
민법상 불법행위의 인정 범위는 상당히 넓다. 쟁의행위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할 때 노동법의 이념이나 쟁의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합법적인 쟁의권 행사는 상당히 힘들어진다.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 사건 당시 나는 울산지법에 근무하며 동료 판사들과 이런 청구를 인용하는 것이 맞는지, 배상액을 획기적으로 제한할 수 없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답은 언제나 민사법 논리로 이를 막기는 무리라는 결론이었다.
앞선 판결은 2013년 12월에 있었지만 상황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 전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 '손잡고'가 관련 통계를 공개했다. 2020년 11월 기준 손배소송은 59건, 청구액은 658억 원이고, 1989년부터 올해 5월까지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전체 손해배상액은 316,028,657,053원이었다.
어렵게 합의에 이르렀던 대우조선해양 사안에서 사 측이 최근 470억 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정규직의 절반인 200만 원 정도 받던 하청노동자들이 그들 표현에 의하면,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다 못해 수년간 삭감된 임금 회복을 요구하며 파업한 행위가 법상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들의 삶은 더욱더 파괴될 것이다.
"악법도 법입니까?" 학생이 질문하면 "악인도 인간인가?" 교수는 반문한다. 이렇게 말문을 막는 수사(修辭) 후에 돌아서서 '악법도 법인가?' 법학교수는 우울하다(최종고 교수). 불법파업에 대한 막대한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명한 후에 '이런 판결이 합당한가?' 판사도 심란하다.
강자라고 가해할 권리가 장전에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노동자의 가해할 권리(단체행동권)와 민사상 책임면제는 헌법과 법률에 규정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강자는 당연한 듯 가해하고 약자는 무해할 의무만 진다. 노동자는 무궁화 꽃이 백만 번을 피어도 제자리에서 쥐 죽은 듯 있는 게 좋다. 손가락만 잘못 까딱여도 손배가압류라는 총알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손배가압류는 유혹적인 필살기다. 그러나 무규칙 이종격투기조차 치명적인 공격은 금지한다. 불법이 아닐지는 몰라도 이런 무기는 반칙이다. 그래도 계속 악용된다면 노란 봉투법이든, 까만 봉지법이든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