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7일 장중 달러당 1,380원을 넘어섰다. 13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전날인 6일까지 5거래일 연속으로 연고점을 경신한 상태다.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가 그만큼 추락했다는 의미다. 수입물가는 치솟는데 수출실적은 나아지지 않아 한국 경제가 큰 부담을 지고 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는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달러당 1,400원 돌파의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원화 가치의 약세 요인으로 우선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대외 의존도가 높아 외부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고, 금융시장도 가장 개방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라 돈이 썰물처럼 나갈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짚었다.
원화 가치가 낮아지면 수출 실적은 호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박 교수는 "금융 위기가 우려되는 신흥국이 40개국 정도 되는데, 이런 신흥국들 대부분이 한국산 제품의 주요 고객"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경기의 부정적 전망 때문에 해외 국가들의 소비가 줄고 한국산 제품의 수출도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중국 경제의 부진도 원화 가치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박 교수는 "중국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미중 간 갈등으로 대외 여건이 안 좋아지면서 수출 성적이 안 좋아지는 상황이라 환율이 올랐다고 수출 호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가 정상화한다 하더라도 원화 가치엔 호재가 아닐 수 있다. 박 교수는 외환시장에서 원화에 대한 수요가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원화가 중국 위안화의 프록시 통화(대용 통화)로 불렸기 때문"이라는 점을 짚었다.
그동안은 중국 경기의 호황에도 위안화에 대한 투자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이 그 대체재로 찾은 것이 원화였다. 하지만 미중 간 갈등이 증폭되고 한중 경제와 원화-위안화 간 결별 현상(디커플링)이 심화하면 향후에는 이런 흐름도 깨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기조를 공고하게 하고 있는 점도 원화 가치를 낮게 전망하는 요인이다. 박 교수는 "올해 미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기회는 3번 있는데, 우리나라 한국은행의 금통위원 회의(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는 2번 남았다"면서 "연준이 금리를 세 차례에 걸려서 몇 단계씩 올릴 수 있고, 한은은 2번에 걸쳐 한 단계씩 올릴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미국과 우리나라의 금리 역전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 역전 현상이란 일반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는 상황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되면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금융시장에 돈을 묶어둘 요인이 떨어지기 때문에 외화는 더욱 유출되고 원화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것과 같은 외환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 교수는 "정부 입장에선 환율 시장이 우려스럽다고 하면 진짜 우려가 생긴다"면서 "적극적으로 안전망을 만들고 있다, 적극 개입해서 환율을 방어할 거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실질적으로 대외 건전성이 양호하다고 볼 수 있는, 정부 입장에서 믿는 구석도 있다. 한국의 경제적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안정적이라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기축통화로 불리는 엔화를 보유한 일본보다도 한 단계 위"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이 정말 불안하면 한국에서 국채를 발행했을 때 국책을 외국에서 안 사주는데, 아직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 교수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로 위안화 시장과의 결별이 발생하고 있고, 미국 연준의 긴축 기조가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는 상황에서 (원화 가치를) 옛날 수준으로만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면서 "추가적인 안전 장치를 만들어 놔야 될 상황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