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경북 포항 인덕동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달 서울을 강타한 집중호우 당시에도 지하주차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지 한 달도 안 돼 또다시 사고가 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침수에 취약한 지하 공간 특성을 감안해 "선제적인 배수∙방수시설 설치가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50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S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A(66)씨가 실종 6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A씨가 차량을 이동시키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했다가 급격히 불어난 물에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가 난 S아파트와 직선거리로 400m 정도 떨어진 W아파트에서도 이날 오전 주민 여러명이 지하주차장으로 차량을 이동시키러 갔다가 실종됐다. 이들은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니까 차를 옮기라는 관리사무실 안내 방송에 따라 내려갔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날 밤부터 2명이 생존한 채로 구조됐고, 6명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지하주차장 침수로 인한 인명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도권에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에도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 지하주차장에서 실종된 남성이 신고 접수 나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2016년 태풍 차바 때도 울산의 한 주상복합건물 지하주차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했고, 2020년 부산 집중호우 때는 해운대의 한 호텔 지하주차장에서 3명이 빗물에 휩쓸렸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침수 방지시설과 관련한 지침 부재가 집중호우 때마다 지하주차장의 인명 피해를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폭우 때 빗물이 빠르게 들어찰 수밖에 없는 지하 공간 특성상 방수와 배수시설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관련 법∙제도는 사실상 전무하다. 행정안전부의 ‘지하 공간 침수방지를 위한 수방기준’에 따르면 지하건축물에 배수펌프 등 침수방지 대책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에 한해 적용된다. 서울 서초구와 광진구 등에선 지하층이 있는 건물에 차수판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벌칙 규정이 없어 사실상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초고층 지하연계 복합건축물은 사전재난 영향성 검토 협의 단계에서 침수 방지시설 지침을 적용 받지만, 다른 건물은 의무화돼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상근 한국건설방수학회 공동회장도 “건축법에도 관련 기준이 없으니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배수시설은 건물 누수나 물청소에 대비한 고랑 정도가 전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하주차장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선 빗물 유입을 막는 차수판 의무 설치와 들어찬 물을 빼낼 배수펌프 용량 증설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오상근 회장은 “공동주택의 경우 자발적으로 설치하기엔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차수판과 배수시설 설치를 의무화해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주 교수도 “외국처럼 안전시설을 건물에 설치하면 풍수해 보험료를 할인해주거나 지자체에서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