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주(43·미국명 줄리 비엘)씨는 아직 고개도 제대로 못 가누던 만 3개월 때 태평양을 건넜다. 할머니는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부모도 모르게 미주씨를 입양보냈고, 미주씨는 미국에서 새로운 부모를 만나야 했다.
미국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양부모는 네 살 때 이혼했고, 미주씨는 온갖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어딘가 있을 혈육의 존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여러 차례 친부모를 찾으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양기관은 친부모 찾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서류에 적힌 부모의 이름도 가짜였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쌍둥이 언니가 있다는 것뿐.
40년 만의 가족 상봉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얼굴인식 기술이었다. 미주씨 사연을 접한 서울 마포경찰서 실종수사팀은 생일이 비슷한 여성 1,124명을 추려낸 뒤, 평소엔 범죄 수사를 위해 쓰던 얼굴인식 시스템을 통해 미주씨의 쌍둥이 언니를 찾았다. 부모에게 연락해 유전정보(DNA) 감식을 진행했더니 99% 확률로 친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본보 7월 5일 자 1면 참조)
과거 공상과학(SF) 영화나 첩보물에 등장했던 얼굴인식 기술은 미주씨의 친부모 찾기에서 보듯, 인공지능(AI) 딥러닝(사람의 사고방식을 기계에 가르치는 심층학습)에 힘입어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다. 경찰이 미주씨 언니를 찾는 데 사용한 얼굴인식 시스템은 정부출연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AI·로봇연구소가 개발한 기술이다.
이 기술을 제공한 김익재 AI·로봇연구소 소장은 1일 서울 성북구 연구소에서 본보와 만나 "얼굴인식 AI는 이제 사람 눈보다 정확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코로나 탓에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거리에서 만난 지인을 못 알아봤던 경험이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지만, 얼굴인식 AI는 마스크를 쓴 사람도 95% 이상의 확률로 알아본다. 심지어 주인이 아니면 좀처럼 알아보기 힘든 같은 종 반려견까지 구분할 수 있다.
초기 얼굴인식 기술은 지금처럼 정확하지 못했다. 하지만 엔진 개발에 딥러닝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성능의 차원이 달라졌다. 김 소장은 "활용에 동의한 수백만 명의 얼굴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스스로 얼굴의 특징을 뽑아내 저장하도록 학습시켰다"며 "그 결과 99.8%의 일치율로 '이 사람이 저 사람이다'를 파악하는 프로그램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연구팀은 2015년 세계 최초로 5세부터 80세까지 나이 변환이 가능한 3차원(3D) 몽타주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기존 얼굴인식 기술과 함께 실종아동 찾기나 범죄 수사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문처럼 정확한 수준에 이르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다. 김 소장은 "10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폐쇄회로(CC)TV 등에 찍힌 사람의 모습은 픽셀 수가 너무 부족해 얼굴인식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상도를 높이는 비용도 문제지만, 초상권 침해 등 윤리적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소는 저화소 영상에서도 쓸 수 있는 얼굴인식 기술을 개발 중이다. 몸 전체 특징을 활용해 특정인의 동선 등을 파악하는 재식별 기술은 올해 말 실증을 앞두고 있다. 원리는 얼굴인식 기술과 비슷하다. AI가 얼굴 대신 몸 전체의 모습으로 특징을 파악한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특정인의 동선을 수분 내에 파악할 수 있다.
김 소장은 이 기술이 실종아동의 이동 경로를 신속하게 찾는 과정에 유효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실종 신고는 실종 두세 시간이 지난 뒤 들어오는데, 뒤늦게 파악하려면 봐야 하는 CCTV가 수십 대가 넘는다"며 "기술이 상용화할 경우 아동이나 노인 등 실종 수색에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