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닝당출루허용률(WHIP)이 최근 투수를 평가하는 주요 척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정교한 컨트롤과 압도적인 구위를 동시에 갖춰 안타ㆍ볼넷은 적게 내주면서 삼진은 많이 잡아내 출루를 최소화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엔 정규이닝을 채운 선수 중 아무도 0점대 WHIP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런데 올 시즌엔 윌머 폰트(SSG)와 안우진(키움) 아담 플럿코(LG) 등 3명이나 ‘0점대 WHIP’에 도전하고 있다.
팀당 25경기 안팎을 남긴 6일 현재 폰트는 24경기(159이닝)에서 WHIP 0.92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개막전부터 9이닝 무피안타 무사사구 퍼펙트 투구로 출발해 SSG의 1위 수성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 페이스는 다소 주춤했는데 서늘한 바람과 함께 다시 시즌 초반 모드로 돌아갈지가 0점대 수성의 관건이다.
반면 WHIP 0.98(25경기 150이닝)을 기록 중인 플럿코는 상승세다. 시즌 초반에도 제 몫을 했지만 KBO리그 적응을 마친 6월부턴 ‘특급 에이스’ 성적을 내고 있다. 특히 2경기 이상 부진한 적이 없고 올 시즌 25경기에서 모두 5이닝 이상 소화할 정도로 꾸준하다는 점도 기록 달성 확률을 높이는 요인이다.
올 시즌 리그 전체 토종 에이스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안우진도 강력한 후보다. 선발 25경기에서 165이닝이나 소화하고도 WHIP가 0.95에 불과하다. 피안타율(0.187)도 낮지만 특히 9이닝당 탈삼진 개수가 10.15개로 압도적인 리그 1위여서 기록 달성 가능성이 가장 높다. 향후 5경기 정도 더 등판할 예정인데, 이대로라면 시즌 예상 탈삼진은 220개로 아리엘 미란다(전 두산)가 지난해 세운 ‘한 시즌 최다 탈삼진’ (225개)도 넘볼 수 있다. 다만 세 선수 중 9이닝당 볼넷(2.56개) 이 가장 높은 것은 변수다.
에릭 요키시(키움ㆍ1.05) 케이시 켈리(LGㆍ1.07) 드류 루친스키(NCㆍ1.09)도 강력한 후보들이다.
이들 중 한 명이라도 0점대 WHIP를 달성한다면 ‘투고타저’ 시즌이었던 1999년 임창용(당시 삼성) 이후 23년 만에 귀한 기록이 탄생한다. 당시 임창용은 중간ㆍ마무리로만 71경기(138.2이닝)나 소화하며 WHIP 0.87을 기록했다. 선발 투수로 한정하면 무려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조계현(당시 해태)이 1996년 27경기(선발 26경기·191.2이닝)에 등판해 0.99를 찍었다. 임창용 이후로는 2012년 윤석민(당시 KIA)이 28경기(153이닝)에서 1.00로 가장 근접했고, 조쉬 린드블럼(당시 두산)도 2019년 30경기(194.2이닝)에서 1.00을 찍으며 최우수선수상(MVP)과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