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 출고 대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이 중고차 시장에 몰리면서, 중고차 가격이 신차를 뛰어넘는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5, 6월 중고차 가격이 다소 안정세를 찾아가는 듯했지만 최근 새 차 출고가 많이 늦어지면서 다시 상승하고 있다. 일부 인기 차량은 1년 정도 탔는데도 같은 모델의 새 차 출고 가격에 프리미엄을 얹어서 팔아도 될 지경이다.
5일 중고차 플랫폼 '첫차'에 따르면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HEV)'의 이번 달 중고차 최고가 시세는 5,250만 원으로, 1월(4,649만 원)보다 12.9% 상승했다. 같은 등급의 현대차 싼타페 HEV의 중고차 최고가 시세 역시 1월 4,640만 원에서 9월 5,180만 원으로 11.6% 올랐다. 자동차 가격이 연식 변경을 거치면서 보통 2~4%가량 오르는 것을 감안하면, 중고차 시세는 몇 배씩 상승한 것이다.
중고차 시세는 수요·공급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뀐다. 연초부터 3월(4,300만 원)까지 완만히 하락했던 쏘렌토 HEV 중고차 최고가 시세는 4월부터 다시 상승, 5월 5,359만 원을 기록했다. 다음달 다시 4,555만 원으로 크게 한 번 떨어졌지만, 7월 이후 5,000만 원대에서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싼타페 HEV의 중고차 최고가 시세도 비슷한 움직임을 나타냈다. 5월 5,317만 원까지 올랐던 시세는 6월 4,560만 원으로 바닥을 다진 후, 석 달 내리 올랐다.
최근 두 차량의 중고차 시세는 신차 가격도 뛰어넘었다. 쏘렌토 HEV는 기본 가격이 △2륜구동 3,815만~4,490만 원 △4륜구동 4,045만~4,720만 원이다. 모든 옵션을 추가해도 최고 4,958만~5,188만 원이다. 하지만 중고차 시세는 이보다 100만~200만 원가량 비싸다. 싼타페 HEV는 풀 옵션 새 차 가격이 4,962만~5,190만 원으로, 가장 비싼 중고차와 시세가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하다.
최근 1년 동안 2,500만 원가량 올려 논란이 있는 테슬라의 '모델 Y'는 신차 가격이 △롱레인지 9,664만9,000원 △퍼포먼스 1억473만1,000원이다. 하지만 중고차 플랫폼 '엔카'에 올라온 최고가 시세는 롱레인지 9,699만 원, 퍼포먼스 1억1,050만 원이다. 1년 동안 3만㎞ 이상 주행한 중고차도 9,600만 원에 등록돼 있다. 신차 가격보다는 저렴하지만, 가격 인상 폭을 감안하면 구입가보다 비싸게 판매하는 셈이다.
이처럼 중고차 시세가 신차 가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싼 이유는 '공급난'이다. 차량용 반도체, 원자재 부족으로 차량 생산량이 줄면서 출고 대기 기간이 무한정 늘어나고 있다. 실제 싼타페 HEV는 올 초까지 8개월이면 출고가 가능했지만, 이젠 2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쏘렌토 HEV도 출고 대기 기간이 연초 14개월에서 18개월로 넉 달이나 미뤄졌다. 두 차량 모두 지금 계약하면 2024년 3~5월에나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테슬라 전기차는 반도체 수급난과 미국·중국·유럽 우선 공급 등이 겹치면서, 국내로 들어오는 물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신차는 계약 후 1, 2년가량 기다려야 받을 수 있지만 중고차는 계약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간을 돈주고 산다'는 식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며 "일부는 원자재 공급난, 인플레이션 등으로 자동차도 사두면 가격이 오르는 것을 알고, '샤테크(샤넬+재테크)' '롤텍스(롤렉스+재테크)'에 이어 '차테크(자동차+재테크)'에 나선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