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 냄새가 찾아왔다. 여름철 잠들었던 보일러도 본격적으로 '운동'을 준비할 때다. 그런데 문득 '보일러 회사는 여름에 무얼 먹고 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대표 보일러 회사인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그룹의 임직원은 1,500명을 넘어서는데 겨울 한철 장사로 기업 유지가 가능할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보일러 업계는 여름철을 무사히 넘겼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았는데, 비결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한 '역발상'에 있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보일러 제조사 경동나비엔은 '온수 사용'에 초점을 맞춘 제품으로 여름 시장을 공략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찬물 샤워 대신 온수 샤워를 꾸준히 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보일러는 '난방 제품'이라는 인식을 '온수가전'으로 넓혀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나비엔 콘덴싱 ON AI' 보일러는 온수 공급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기존 보일러 제품은 온수를 켜도 보통 1분 정도는 기다려야 따뜻한 물이 나왔다. 또 온수가 나오다가도 설거지나 세탁기에 물이 들어가면 온수가 갑자기 찬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나비엔 콘덴싱 ON AI' 보일러는 온수 사용 전 '퀵 버튼'을 눌러 두면 10초 이내에 온수를 쓸 수 있고 '터보 펌프'를 이용해 온수의 양도 일정하게 유지했다. 업계 최초로 무선 업데이트(FOTA) 기능을 적용해 소비자의 온수, 난방 사용 패턴을 학습하게 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겨울에만 사용하는 난방 설비로 여겨졌던 보일러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온수를 제공하는 기기라는 점에 초점을 뒀다"면서 "스마트한 보일러 사용을 통해 쾌적한 생활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전업계의 '역발상' 흐름은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형 프리미엄 TV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데 '이동식 TV'가 나타나 틈새 시장을 넓히고 있고, 사람의 손으로 직접 닦아야 했던 창문을 대신 청소해 주는 로봇 청소기도 등장했다. 예상하지 못한 가전 제품이 나타나면서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에도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LG전자의 이동식 무선 스크린 LG 스탠바이미(StanbyME)는 '바퀴 달린' TV다. 기존 TV 제품과는 달리 침실, 부엌, 서재 등 원하는 곳으로 TV를 옮겨가며 시청할 수 있다. 전원 연결 없이도 최장 3시간 동안 화면을 볼 수 있다. 27형(대각선 길이 약 68cm) 제품은 화면 좌우를 앞뒤로 각각 65도까지 조정할 수 있고 높이도 최대 20cm 내에서 조정 가능하다. 한 곳에 고정돼 있는 가구가 아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겉모습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여지를 남겼다. LG 스탠바이미는 지난해 기존 TV와는 다른 색다른 디자인을 인정받아 'IDEA 디자인어워드' 최고상에 해당하는 금상을 비롯, 레드닷디자인어워드와 iF디자인어워드에서도 본상을 받으며 세계 3대 디자인상을 싹쓸이했다.
창문 청소의 고정 관념도 깨졌다. 창문은 수직으로 서 있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기계가 붙어 있기 어려워 사람이 직접 손걸레를 들고 청소를 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창문에 수직으로 붙어 있을 수 있는 '창문 로봇청소기'가 나타났다. 샤오미의 미홀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이나 높은 아파트의 위험한 창문 청소에 안성맞춤이다. 바닥을 누비는 로봇청소기처럼 창문에 달라붙어 청소를 해준다. 정전 때도 내부 배터리로 약 20분 동안 움직이며 추락 방지 안전 로프도 걸어 둘 수 있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생활 패턴이 다양해지면서 기존 가전 제품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벗어난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다양한 제품군으로 틈새 시장 공략과 함께 소비 패턴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