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일에서 6일 사이 남해안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여전히 국민들의 뇌리에 선명한 19년 전의 태풍 '매미'를 떠올리게 한다. 2002년 우리나라를 꿰뚫고 지나간 태풍 '루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상륙한 매미는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을 초토화했다. 상륙 시점의 순간최대풍속이 당시 풍속계 상한이었던 초속 60m까지 올라가며 짧은 시간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힌남노가 다가오자 태풍 매미가 회자되는 건 경로와 강도 등이 현재까지는 비슷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2003년 9월 6일 먼바다에서 발생한 매미는 대만 쪽으로 북서진하다 잠시 정체한 뒤 중심 기압 910헥토파스칼(hPa), 중심 최대풍속이 초속 54m에 달하는 초강력 태풍으로 성장해 우리나라로 곧장 직진했다.
1일 오후 3시 기준 대만 타이베이 남동쪽 약 550㎞ 부근 해상에서 남남서진하고 있는 힌남노도 인근 해역에서 잠시 정체하며 세력을 불린 뒤 2일부터 대한해협 방향으로 북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3년 9월 11일 북상을 시작한 매미는 세력이 약해지지 않은 채 하루 만에 제주도를 지나 경남 남해안에 상륙했고, 약 6시간 만에 대구 인근을 통과해 동해로 빠져나갔다. 상륙 당시 중심 기압은 950hPa, 중심 최대풍속은 초속 40m였다.
특히 10분 평균 최대풍속(초속 51.1m)과 순간최대풍속(초속 60m) 모두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엄청난 피해를 낳았다. 태풍으로 인해 해면기압이 기록적으로 낮아져 경남 해안지역은 해일 피해가 컸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은 400㎜ 가까운 비를 뿌리는 등 비 피해까지 더해졌다. 사망 및 부상자가 130명, 재산 피해액은 4조2,225억 원에 달했다.
매미가 이렇게 강력한 위력을 유지하며 우리나라까지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해수면 온도다.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26도 이상일 때 유지되는데, 당시 평년보다 해수면 온도가 2~3도 높아 세력이 약화되지 않았다.
힌남노도 마찬가지다. 현재 제주 인근 바다 해수면 온도는 27도로 평년 대비 2~3도 높고, 태풍이 올라오는 수역 해수면 온도도 29도 정도라 힌남노가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상태다. 현재 기상청 예상대로라면 5일 제주도 인근에 접근할 때 힌남노의 강도는 중심 최대풍속이 초속 44~53m인 '매우 강'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 속도가 빨랐던 것도 매미의 파괴력에 한몫했다. 대만 인근에서 강력해진 태풍이 북진 과정에서 약해지기 전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 힌남노의 경우 북위 30도 선을 통과하는 5일 전후로 속도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오른쪽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왼쪽에는 티베트고기압이 버티고 있어 태풍은 그 사이 통로로 북상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북쪽 기압골이 태풍을 북동쪽으로 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힌남노의 경로에는 불확실성이 커 매미와 비슷한 결과를 야기할지 속단할 수는 없다. 강력한 태풍일수록 작은 변화에도 경로를 크게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10년간 매미급으로 강했던 '차바(2016년)' '마이삭(2020년)' '볼라벤(2012년)' 등이 왔어도 철저한 대비로 피해를 최소화한 경험을 축적했다. 우 분석관은 "산사태 및 시설물 파손, 공사장 파손 등을 대비해야 하며, 태풍 영향권에 접어든 이후로는 밤에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