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의 자폐스펙트럼, 남자 아이 확률이 4배 더 높다

입력
2022.09.03 11:00
17면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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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자폐’라고 부르는 증상의 정식 학술명칭은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이하 ASD)이다. 다양한 색깔의 빛이 연속적으로 분포하는 걸 가리키는 '스펙트럼'이란 말을 붙여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르는 건 진단명이 같아도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붙어도 ASD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핵심증상(triad)이 나타나는데, 만 3세 이전부터 나타나고 발달영역 전반에서 문제를 갖게 된다. 우선 ①눈 마주치기, 표정, 몸짓을 통해 남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서로 감정을 주고받지 못해서 타인에게 냉담하거나 무관심하게 보이는 사회적 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의 장애를 나타낸다. ②말을 하지 못하거나, 하더라도 대화를 지속하지 못하며 남들의 몸짓이나 표정 또는 말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소통(communication) 장애가 있다. ③놀이나 관심이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융통성이 없고, 반복된 행동의 문제를 보인다.

ASD 환자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민낯을, 우리가 지금처럼 이해할 수 있게 된 과정엔 수많은 착오가 있었다. 1943년 레오 캐너(Leo Kannner·1894~1981)가 10여 명의 유아자폐증 아동을 처음 보고했을 때 학계는 혼란에 빠졌다. 증상이 후천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아동기 조현병(Childhood schizophrenia)이나 정신증으로 파악하는 등 혼돈 상황이 이어지다가, 마이클 러터(Michael Rutter·1933~2021)에 의해 많은 오해가 정리됐다.

러터는 평생을 이 연구에 바쳐, 생의 말년에는 60~70대 노인 ASD 환자까지 상담했다. 그는 ASD가 소아조현병이 아닌 거의 전적으로 유전되는 것이며, 따라서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법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냈다. 이전까지만 해도 환경적·후천적 요인, 즉 부모의 잘못된 육아로 조현병이 발생한다는 주장이 상식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조현병을 만드는 엄마’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러터 덕분에 ASD 자녀를 보살피느라 가뜩이나 힘겨웠던 수많은 부모들이 '애를 조현병 환자로 잘못 키웠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ASD 유전성에 대한 러터의 업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체계적 연구는 ASD가 정신질환 진단체계의 두 축인 국제질병분류(ICD)와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의 통계 편람'(DSM)에 적절히 반영되는 기틀을 마련됐다. 2007년 유엔이 매년 4월 2일을 ‘세계 자폐인의 날’로 지정했던 것도 러터에 의해 확립된 자폐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 필요성에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러터와 그 이후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ASD에 대한 이론이 확립됐지만, 그럴수록 ASD 환자와 보호자들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ASD에 대한 일반 대중의 무관심 때문에 생긴 많은 오해도 여전하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서번트증후군에 대한 환상이다. 기억력이 비상하게 뛰어난 우영우 변호사와 같은 ASD 성향을 '서번트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한다. 이런 능력은 기억력, 그리기, 음악, 감각식별 영역에서 나타나지만 그 비율은 ASD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사회진출이 힘든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런 특별한 재능이 주어진다면 좋은 일이겠으나, 안타깝게도 90%의 ASD에는 이런 재능이 없다.

ASD의 의학적 현실은 더욱 냉정하다. 뇌의 질환이기 때문이다. 정서장애 일종으로 보는 시각에선 발병 원인을 정서적 결핍이나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식하고, 부모들이 아동을 거부적인 태도로 키우는 것에서 이유를 찾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증상이 있어도 커가면서 저절로 좋아진다는 낙관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건 우리들의 희망과 바람일 뿐이다. ASD 환자가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이거나 진단이 잘못된 경우다. 유일한 대응법은 최대한 빨리 진단해서 아이에게 적합한 개인화된 특수교육, 언어교육, 행동수정치료, 재활치료, 약물치료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뿐이다.

ASD는 역학적으로 볼 때 잘 알려진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대중들에게는 아직 생소할 수 있다. 성별로는 남자아이에게서 4배 더 흔하게 나타난다. 전형적 자폐증은 1만 명의 신생아 중 5명에게서 발생한다. 하지만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일반인 1만 명당 91명에게서 자폐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3명 중 2명의 ASD 환자에게서 지능(IQ) 저하가 나타난다. 뇌전증과 경련발작이 많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청소년기까지 약 3분의 1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경우엔 경련발작을 막기 위해 항전간제 투여가 필수적이다. 항전간제 사용에 따른 지적저하를 우려해 약물투여를 꺼리는 경우가 있지만, 약물을 사용하지 않아 뇌전증 증상이 반복될 경우 훨씬 더 심각한 지적기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반인이 잘 모르는 점이 있는데, 바로 ASD에 유전적 소인이 있다는 부분이다. ASD 아동의 형제자매 중 2~3%에서 ASD가 발생하는데 이는 일반인의 경우보다 60배나 높은 수치이다. 비전형적 형태의 자폐증상이 보이는 경우까지 확장하면 6%가량의 유병률을 보이는데, 이는 일반 인구보다 120배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우리는 ASD와 그 환자·보호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의사-환자-사회라는 3축이 중심이 돼야 한다. ASD와 같은 역사적으로 오해와 미신으로 얼룩진 질환에 대한 파악은 의사의 과학적 판단이 시작점이 돼야 한다. 또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원칙이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우영우 변호사의 조력자인 정명석 변호사와 같은 시선이 필요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내면에 놓인 의도와 노력들을 읽어내는 지혜가, 많은 ASD 환자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ASD 질환은 '어떻게 되겠지', '잘되지 않겠어'라는 낙관이 금물인 질환이다. 조기발견과 함께 해당자에 맞는 교육과 양육이 제공되려면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따라서 ASD 환자 90%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널리 알리는 게 부정적 편견을 줄이는 방법 중의 하나다. 더 빈도가 낮은 현상에 대한 지식으로도 사람들은 모든 현상을 100%로 정리하고 단정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편견을 없앤다는 것은 수백만 명 중 단 한 명의 예외도 인정하여 그 사람을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ASD와 같은 뇌질환인 뇌전증의 4,000년 역사를 무지(stupidity), 미신(superstition), 낙인(stigma)의 3단어로 요약한 뒤, 최근 100년간 눈부시게 발전한 신경과학으로 인한 변화마저 지식, 미신, 낙인이라고 했겠는가? ASD 만은 지식(knowledge), 믿음(trust), 배려(tolerance)라는 더 나은 방식으로 의사-환자-사회가 하나가 되어 ASD에 대응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최준호 한양대 의과대학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위원장

한양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현재 한양대학교 구리병원에서 진료하며 대학에서 조현병, 생물정신의학, 뇌파 등을 강의하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미래전략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와 정신응급체계 수립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협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