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서고 있다. 이들 지자체들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부담 해소를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역들이라, 곳간 사정을 생각하지 않은 선심성 행정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1일까지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한 전국의 광역·기초 지자체는 모두 22곳이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8곳으로 가장 많고, 경남 5곳, 강원 4곳, 전북 3곳, 경북 1곳이다. 광역단체 중에서는 제주도가 유일하다.
전남 영광군과 전북 김제시는 1인당 100만 원을 준다. 4인 가족이면 무려 400만 원으로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월급과 맞먹는 수준이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시기를 넓히면, 김제시의 경우 4번이나 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냈다. 경남 사천시와 전남 여수시, 장성군은 1인당 30만 원을 지급한다. 전남 광양시는 1인당 30만 원, 19세 미만 청소년과 아동에게는 40만 원을 더 얹어준다. 경남 고성군은 1인당 25만 원, 경남 산청군, 경북 경산시, 전남 장흥군과 무안군, 전북 정읍시, 강원 속초시와 양양군은 1인당 20만 원, 경남 김해시와 거창군, 강원 원주시와 고성군, 전남 함평군과 신안군, 전북 고창군, 제주도는 1인당 10만 원의 지원금을 책정했다.
이들 지자체 중에서는 올해 상반기에 이미 재난지원금을 집행한 곳도 많다. 정읍시와 여수시, 광양시, 영광군, 장성군, 장흥군은 지난 1월 10만~30만 원씩 지급했다. 함평군은 2월, 고창군은 3월에 1인당 10만 원씩, 김제시는 1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각 10만 원씩을 나눠줬다. 창원에 사는 박진수(48)씨는 “단체장 마음대로 복불복 보너스”라며 “사는 곳에 따라 누군 주고 누군 안 주는 건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가계 부담을 덜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게 지급 취지지만, 사실상 지난 지방선거 당선사례금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100만 원 지급을 결정한 강종만 영광군수는 6·1 지방선거 운동 당시 "당선 되면 행복지원금(재난지원금)을 1인당 10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공약했고, 30만 원을 주는 박동식 사천시장도 "그동안 사천시민은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며 지급을 약속했다. 후보시절 ‘얄팍한 매표 행위’라며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했던 홍태용 김해시장도 슬그머니 지원금 행렬에 가세했다.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지차제 22곳 중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새로 단체장이 선출된 지역은 14곳이고, 재난지원금을 공약으로 내세운 단체장도 15명이다.
문제는 이들 지자체들의 곳간 사정에 있다. 재정자립도가 10~20% 안팎으로 전국 평균인 49.9%에 한참 못 미치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20만 원을 주는 정읍시의 재정자립도는 11.7%로 시 단위 75개 기초단체 가운데 꼴찌다. 비슷한 수준인 김제시는 1인당 100만 원씩 지원금을 주기 위해 811억 원, 올해 본예산의 9%에 해당하는 돈을 마련해야 한다. 과도한 재정 부담에 당초 50만 원 지급을 약속했던 경남 고성군은 올 추석에 25만 원을 주고, 나머지 25만 원은 내년 설에 지급하는 ‘할부책’까지 내놓은 상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초선 신임단체장들이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도 없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해 가뜩이나 열악한 재정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며 “이는 재난지원금을 종료하고 법에 의한 보상제도로 바꾸겠다는 정부 방침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